좁은 취업문을 통과하려면 서류전형의 높은 문턱부터 넘어야 한다. 일부 기업은 입사지원서에 대학과 대학 성적, 어학 성적, 인턴 경험, 공모전 입상 경험은 물론이고 키, 몸무게, 자격증, 가족사항, 부모 재산 같은 세세한 개인정보까지 쓰도록 요구한다. 그렇다 보니 학벌과 외모 차별 논란이 일고 지원서를 빽빽이 채우기 위한 ‘스펙(취업에 필요한 각종 자격이나 점수) 경쟁’이 치열하다.
고용노동부가 그제 직무 능력 평가 중심의 ‘역량기반 지원서-역량 테스트-역량 면접’ 모델을 공개했다. 스펙 경쟁을 없애고 능력 중심의 채용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뜻이다. 역량기반 지원서에는 학력이나 어학 성적 대신 교내외 활동, 자격사항, 인턴 근무 경험 같은 직무 역량을 자세히 쓰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주민등록번호, 신체 조건, 부모의 재산, 가족사항을 적는 칸도 없다. 자격증이나 어학 점수보다 직무 능력과 리더십을 쌓기 위해 학교생활을 얼마나 충실히 했는지를 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직접 채용 모델을 개발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고용부는 이 방식을 올해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 권고하고 맞춤형 방식을 개발해 민간기업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업종과 철학이 천차만별인 기업에 무리하게 정부가 만든 일률적인 채용 잣대를 강요한다면 시장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학력과 어학 성적을 빼면 학벌주의와 스펙 경쟁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안이하다. 학력이야말로 지원자의 잠재력과 역량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변별력이 있는 기준 중의 하나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넘나드는 입사 전형에서 객관적 기준인 학력을 아예 빼는 것은 ‘깜깜이 채용’을 하라는 것과 같다. 선택은 기업에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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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채용 편의를 위해 한꺼번에 많은 인원을 뽑는 그룹 공채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구 기업처럼 부서별로 필요한 인재를 수시로 채용하는 직무 중심의 채용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직업’보다 ‘직장’만 추구하는 청년들의 스펙 경쟁이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