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소재 지하철 분당선 구룡역 승강장.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승객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구룡역은 지하 6층으로 이뤄진 대형 역이지만 정작 일일 승하차 인원은 3000여 명에 불과해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출퇴근 시간조차 한산
금요일 퇴근시간대인 25일 오후 7시 반 구룡역. 지하 6층 수서 방면 승강장의 승객은 기자뿐이었다. 지하철이 멈춰 선 뒤 내린 승객은 7명. 2분 뒤 반대편에서 들어온 도곡행 열차에는 2명이 타고 1명이 내렸다. 44분 동안 구룡역을 오간 열차 20대 중 승하차 인원이 파악된 12대의 열차에서 내린 승객은 93명뿐이었다.
이용객이 적다 보니 구룡역엔 그 흔한 편의점조차 없다. 지하 1층에 있는 사무실 두 곳은 텅 비어 쓰레기만 나뒹굴고 있었다.
○ 이용객 적어도 운영비는 계속 들어
승객이 많든 적든 역사를 운영하는 데는 적지 않은 운영비용이 든다. 전기·수도요금 등 공공요금 부담도 크다. 철도업계에 따르면 구룡역은 1년에 전기를 60만 kW를 쓴다. 1kW에 80.2원이니 매년 4800만 원 정도 드는 것이다. 역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수도요금 등으로 해마다 1000만∼2000여만 원이 더 쓰이기도 한다. 코레일 관계자는 “전기 등 공공요금이 매년 오르면서 운영비용도 해마다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구룡역은 분당선 설계 당시부터 사업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하철역 간 거리는 보통 1.2km 내외. 그런데 구룡역이 생기면서 1.3km 구간에 역이 3개나 생기게 됐다. 구룡역 북쪽으로 600m 거리에 3호선, 분당선 환승역인 도곡역이 있는 데다 700m 동쪽에 개포동역 신설이 예정돼 있다.
구룡역은 1995년 분당선 착공 당시엔 예정에 없었지만 강남구와 지역 주민의 민원으로 1998년 뒤늦게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비만 553억 원이 들었다. 철도청(현 코레일)과 한국토지공사, 서울시가 비용 분담을 두고 갈등을 겪으며 공사가 두 차례나 중단되기도 했다. 강남구와 주민들은 인근에 지하철역이 생긴 덕에 짭짤한 이익을 챙겼다. 구룡역 인근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2004년 9월 지하철이 개통되고 난 뒤 아파트 월세 및 전세금이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강남 주민은 역세권 효과를 봤지만 지하철 운영비는 서울시민의 부담이 됐다. 지역이기주의와 지방자치단체의 오판이 세금만 낭비하는 구룡역을 낳은 셈이다.
1∼8호선 중에는 지난해 구룡역보다 일일 승하차 인원이 적은 곳이 신답 지축 남태령 도림천 장암 마곡 등 6곳이 있지만 이들 역은 대부분 앞뒤 역간 거리가 긴 구간에 세워졌다. 고승영 대한교통학회 회장(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은 “지역 주민과 지자체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하철역이 불필요하게 지어진 곳이 적지 않다”며 “역이 많아지다 보니 탑승 시간이 길어지고 이로 인해 이용객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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