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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물가 2% 조기 달성” 무제한 돈 푼다

입력 | 2013-01-23 03:00:00

■ 정부-중앙은행 합의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2% 물가 상승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로 22일 합의했다. 일본은행은 이를 위해 매달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무제한 돈을 풀기로 했다. 경기부양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아베노믹스’의 압박에 물가 안정을 1차 목표로 하던 일본 중앙은행이 백기 투항한 셈이다.

이날 한국 외환시장은 그리 출렁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중에 엔화를 무제한 풀면 엔화 가치가 떨어져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강화된다. 다른 나라의 수출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환율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앞서 17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일본의 통화정책에 대해 “인위적인 통화가치 하락은 IMF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며 “이웃 나라를 거지로 만드는 정책을 각국이 채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 일본은행 물가 2% 인상 때까지 돈 풀기로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22일 전년 대비 2% 물가 상승을 목표로 내세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행의 기존 1% 물가 인상 목표를 단번에 두 배로 끌어올린 것이다.

일본은행은 애초 2% 물가 상승 목표의 달성 시기를 ‘중기’로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일본은행법을 고쳐 총재까지 바꾸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압박에 두 손을 들었다.

일본은행은 2% 물가 인상을 달성하기 위해 금융 자산 매입 방법을 훨씬 적극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국채 등을 사는 ‘채권매입기금’의 상한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내년부터 매월 일정액의 국채를 금융기관 등에서 사들여 무제한 돈을 풀기로 했다. 자산 매입은 당분간 매월 장기국채 2조 엔(약 23조8200억 원), 단기채권 10조 엔 등 13조 엔 정도로 하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에게 “2% 물가 안정(상승) 목표를 하루라도 빨리 실현하도록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의장인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일본은행의 물가 목표 달성 상황을 정기적으로 검증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무제한 금융완화로 2% 물가 상승 목표가 조기에 달성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1년 동안 금융완화를 통해 46조 엔을 풀었지만, 물가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리 금융완화를 해도 금융기관과 중앙은행 사이에서만 돈이 오갈 뿐 민간과 기업이 소비와 투자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국민들이 소비를 꺼리고 있다. 거품이 한창 일었던 1980년대 후반에도 물가상승률은 1%대였다.

자칫 국내총생산(GDP) 대비 237%까지 치솟은 국가부채가 더 늘어나고 장기금리 상승으로 이자 상환 부담이 커져 재정만 망가질 수도 있다.

○ 세계 환율 전쟁 유발 우려


무제한 금융완화를 내세운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승리한 지난해 9월 26일 이후 엔화 가치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당시 달러당 77.79엔이었던 엔화 환율은 22일 89.75엔으로 상승(엔화 가치 하락)했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일본 수출 기업들은 환호하고 있다. 달러당 엔화 가치가 1엔 하락하면 도요타는 연간 350억 엔, 닛산은 200억 엔의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대감으로 주식시장이 달아올라 지난해 9월 중순까지 9,000엔 선 안팎에서 움직이던 닛케이평균주가는 최근 10,000엔 선을 훌쩍 넘었다. 22일 종가는 10,747.74엔이다.

하지만 미국 유럽 한국 중국 등 수출 경쟁국은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전자 철강 등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에 타격이 클 수도 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원-엔 환율이 1% 하락하면 자동차 수출은 1.2%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과거에도 원-엔 환율 하락이 수출 감소로 이어졌던 만큼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물가상승률 목표치 조정이나 무제한 자산 매입 프로그램 모두 이미 예상이 됐던 것으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며 “여러 부작용을 감안할 때 엔화 약세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6원 하락(원화 가치 상승)한 1062.3원에 장을 마쳤다. 물가상승률 목표 상향 조정이 이미 예정돼 있던 결과인 데다 일본 중앙은행의 자산 매입 시기가 내년부터로 일각의 전망보다 뒤로 미뤄졌기 때문에 변동 폭은 크지 않았다.

도쿄=박형준·배극인 특파원·문병기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