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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유윤종]베르디의 길, 바그너의 길

입력 | 2013-01-23 03:00:00


유윤종 문화부 선임기자

올해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거장 주세페 베르디(1813∼1901)와 독일 음악극(Musikdrama)을 정립한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탄생 200주년이다. 국내외에서 두 사람을 기리는 공연과 축제가 풍성하다. 비슷한 듯 대조를 보이는 두 사람의 삶이 새삼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각각 크고 작은 영방(領邦)으로 분열된 나라에서 태어나 통일 민족국가의 일원으로 삶을 마쳤다. 그러나 두 나라의 조건은 달랐다.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억압 아래 놓여 있었으며 독립의 열망이 강했다. 독일은 분열되어 있었지만 프로이센이라는 신흥 강국이 그 가운데 있었다. ‘남에게 속박을 받는다’는 서러움은 없었다.

베르디의 초기 성공에는 민족주의적 열정이 큰 몫을 했다. ‘나부코’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 ‘에르나니’ ‘잔다르크’ 등 숱한 작품이 독립을 향한 투쟁정신을 담아냈고 이는 이탈리아 민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지식인들은 살롱에서 ‘나부코’ 중 ‘노예들의 합창’에 나오는 “아름답고 잊혀진 나의 조국”을 “아름답고 잊혀진 나의 이탈리아”로 바꾸어 부르며 항쟁의 정신을 불태웠다. 민중은 “비바(만세) 베르디”라고 외쳤다. 베르디(Verdi)라는 이름에 ‘Vittorio Emmanuelle Re d'Italia(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이탈리아의 왕)’이라는 상징성을 담은 구호였다. 1861년 베르디는 통일 이탈리아의 상원의원이 됐다.

바그너의 생애는 이와 달랐다. 초기부터 그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연애담이나 스페인 전승전설 같은 다양한 소재를 담았다. 혁명에 가담해 수배를 받고 국외로 도주하기도 했으나 작품의 색깔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의 이름이 ‘독일’과 깊이 연관지어진 것은 게르만족의 원형설화를 소재로 4부작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쓰게 되면서였다. 설화 속의 신과 영웅, 난쟁이와 요정이 부딪치는 이 대작은 ‘가장 독일적인 거장’으로서 바그너의 이름을 역사에 뚜렷이 각인시켰다. 그러나 바그너는 그전에도 후에도 ‘국가’로서의 독일을 작품에 부각시키지 않았다.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지막 작품인 ‘파르지팔’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스페인 벨기에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작품들에서 진한 ‘독일성’을 느끼고 무대를 독일로 착각하기까지 했다. 바그너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바그너적 ‘독일성’의 많은 부분은 그의 영향을 짙게 받은 후배 작곡가들에게서 비롯됐다. 바그너는 한 사람의 오페라 작곡가를 넘어 새로운 화음과 관현악법, 새로운 악기 개발을 통해 판을 뒤엎는 ‘신음악’을 창조했다. 그의 시도는 리스트에서 말러에 이르는 숱한 작곡가에게 넓고 큰 강처럼 영향을 미쳤다. 외국 작곡가들도 영향을 받았지만 가장 바그너적인 ‘핵심’을 승계한 독일 오스트리아의 후배들은 그로부터 받은 특성들을 통해 ‘독일성’을 표현했다.

오늘날 ‘가장 이탈리아적’ ‘가장 독일적’ 작곡가로 꼽히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사람의 자취를 되돌아보며 오늘날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생각한다. ‘한국적인 것’을 담아내겠다고 할 때 우리는 아직 소재의 측면에서만 그 의미를 찾는 경우가 많다. 춘향전과 심청전을 비롯한 고전의 재창작이 숱하게 이뤄지고,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DB)를 돌려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는 데 힘쓴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의 핵심을 이 시대에 어떻게 독창적인 형식미로 담아내면서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에 천착하는 이는 드물다. 베르디처럼 자신이 계승한 전통 자체로 세계인의 빠른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바그너처럼 새로운 예술 문법으로 시대를 장악해 보겠다는 자신감도 찾기 힘들다.

물론 ‘한류’로 요약되는 한국산 문화는 어느 때보다 넓고 깊게 세계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보다 발 빠르고 세련되게 이를 대체할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국가가 나타나는 순간, 한류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상존한다. “우리의 토양에서만 가능한, 독자적이고도 특징적인 문화양식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자신감이 빠져 있는 탓일 것이다. 탄생 200주년을 맞은 베르디도 위대했지만 오늘날 ‘한국의 바그너’를 더욱 기다리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유윤종 문화부 선임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