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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고통과 청량감 교차… 마취제 같은 목소리

입력 | 2013-01-22 03:00:00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비. 구강 사회. 트랙 #41 Nine Inch Nails ‘Happiness in Slavery’ (1992년)




현대 사회의 기계성을 기계적 음향으로 고발하는 미국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 1992년 ‘브로큰(고장)’에 이어 이를 리믹스한 ‘픽스트(수리)’ 음반을 냈다. 사진 출처 나인 인치 네일스 홈페이지

새해를 맞아 20년 만에 치과엘 갔다. 연말부터 단단한 걸 씹을 때마다 잇몸이 쑤시듯 아파와서다. 의사는 신경치료란 걸 받아야 하는데 아플 수도 있다고 했다.

시술대에 눕자 만감이 교차했다. 첫 단계는 스케일링. 의사는 뭔가로 이와 잇몸을 갈아댔고, 혀끝에 슬슬 피의 맛이 느껴졌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마취주사를 위한 마취란 없는 걸까. 기다란 주삿바늘이 내 소중한 잇몸을 찔러오자 비명이 절로 났다. 성토할 수도 없었다. 입을 쫙 벌린 채 바짝 곤두선 신경으로 ‘그’의 처분을 기다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마취조차 허명(虛名)에 가까웠다. 그가 “쪼끔… 아플 수도 있다”고 하면 상당히 아팠고, “좀 많이 아플 수도 있다”고 하면 1초 뒤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신경을 긁어내는 듯한’ 고통이 아닌, ‘신경을 긁어내는’ 바로 그 고통은 날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었다. 그의 말에 따라 고통을 상상했고 다음 순간 그건 가차 없이 현실화됐다. 마루타와 남영동 대공분실이 떠올랐고 피해자들 생각에 조금 숙연해졌다. 내 치아와 잇몸은 의료도구가 닿을 때마다 나인 인치 네일스(미국의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를 연주하는 듯했다.

50분간의 끔찍한 ‘고문’은 “자, 입 헹구세요”라는 말로 끝났다. “껀난… 건…가여?” 핏물을 토해내며 바보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원하는 답을 얻어냈다.

신경 치료를 한 주 쉰 지난 주말. 행복했다. 토요일엔 홍대 앞에서 본 재즈힙합 밴드 쿠마파크의 그루브에 제대로 신났고, 일요일엔 이태원에서 본 최백호의 재즈 콘서트에 울컥했다. 즐거움이 게스트로 나온 아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공식적인 내 입장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브로큰’ 앨범(1992년)은 악몽 같은 가사와 그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고어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로 유명하다. 수록곡 ‘해피니스 인 슬레이버리’의 가사는 섬뜩하다. 그건 ‘고통스러운 사회를 바꾸고 싶어 하지만 이면에서는 지금 이대로의 속박을 즐기는 노예’에 관한 노래다.

내 구강에도 사회가 있고, 부조리극이 있더라. 묘한 청량감이 고통과 번갈아 찾아왔으니까. 근데 이번 주말은 안 왔으면 좋겠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