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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착한 기업 GBI]소비자는 어떤 기업을 ‘착하다’고 평가하나

입력 | 2013-01-22 03:00:00

업계 2위 기업에 “잘했어요” 더 격려… 골목 상권 침해땐 최하점




삼성전자-LG전자,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SPC그룹(파리바게뜨)-CJ푸드빌(뚜레쥬르)….

시장점유율 1위 기업들과 2위 이하 기업들을 업종별로 짝지은 것이다. 과연 소비자들은 ‘착한 기업’이라고 할 때 어느 쪽을 먼저 떠올릴까. 시장점유율 순위는 소비자들 마음속 착한 기업 순위와 일치할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동아일보와 서울여대 착한경영센터, 리서치앤리서치(R&R)의 착한기업지수(GBI) 조사 결과 업계 1위 기업이 곧 소비자가 생각하는 착한 기업은 아니었다. 점유율 2위 이하 기업들이 착한 기업 순위에선 1위에 오르는 ‘2위의 반란’이 두드러졌다.

이번 조사에선 업종별 인식 차이도 크게 나타났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의 영향으로 특히 편의점, 백화점,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매일 접하는 커피전문점, 음료, 식품, 교육서비스 기업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 ‘2위의 반란’은 왜?

LG전자는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가전과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가전 업종에서 모두 삼성전자를 제치고 착한 기업 1위에 선정됐다. 제품의 품질과 신뢰성 면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인 삼성전자에 뒤졌지만 사회공헌, 직원 배려, 중소기업 동반성장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나항공도 배려 경영과 진정성 경영에서 대한항공보다 각각 한 단계 높은 평가를 받아 근소한 차이로 항공업종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은 이익의 사회 환원과 동반성장을 측정하는 공익 경영 부문에서 종합 6위에 올라 대한항공(10위)을 따돌렸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특정 업종에서 시장 2위 기업의 반란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1위 기업이 준법 경영에 실패하거나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지나친 독주를 하는 등의 배경도 있지만 그보다는 소비자들에게 2위 이하보다 1위 기업에 훨씬 큰 기대를 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풀이했다.

1위 기업일수록 더 많이 베풀고 나눠야 한다는 이른바 ‘고봉밥 경영’을 기대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 2위 기업이 똑같은 액수의 불우이웃돕기 기부금을 낸다면 소비자들은 2위 기업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얘기다.

허종호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장남과 차남이 똑같은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부모로서는 장남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크기 때문에 장남이 미덥지 않을 수 있다”며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로 1위 기업에 거는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시장점유율이 월등한 1위 기업이라면 소비자의 기대 수준은 크게 높아진다. 객관적으로는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배려, 소비자에 대한 진정성, 사회공헌 등 공익 경영의 어느 측면에서나 나무랄 데 없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2위 기업에 밀리는 현상을 뒷받침하는 해석이다.

압도적인 1위를 띄워주기보다는 2위를 더 격려하고 응원하려는 사회 분위기도 착한 기업 순위에 영향을 미쳤다. 영웅에게 더 큰 지지를 보내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상대적으로 약자에게 관대한 문화이다 보니 ‘나라도 1점 더 줘야지’ 하는 일종의 동정(同情) 문화가 점수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를 약자가 이기길 바라는 대중심리인 ‘언더도그(underdog) 효과’, 즉 절대적인 강자가 있을 때 상대적 약자가 강자를 이겨주기를 바라는 현상으로 해석했다. 그는 “삼성전자 등 시장 1위 기업이 워낙 잘나가다 보니 사람들은 내심 ‘톱 도그(top dog)’보다 ‘언더도그’를 지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 업종별 인식 차 두드러져

착한기업지수가 업종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종합 1위인 유한킴벌리가 포함된 생활용품 업종이 평균 67.1점, 종합 3위 한국야쿠르트가 속한 유가공업이 평균 66.5점으로 업종별 순위 1, 2위에 올랐다.

특히 유한킴벌리를 필두로 LG생활건강 애경 한국P&G CJ라이온 등이 속한 생활용품 업종은 공익 경영 부문에서 전체 1위, 진정성 경영 2위, 배려 경영 3위를 차지하며 가장 착한 경영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야쿠르트와 남양유업 매일유업 서울우유협동조합 빙그레 등 유가공업 역시 공익 경영 2위, 진정성 경영 4위, 배려 경영 5위로 대부분의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반면에 편의점 소셜커머스 커피전문점 등은 평균 59점대의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얻는 데 그쳤다. 전체 평균은 63.2점이었다.

지난해 내내 이어진 동반성장 이슈와 함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낳았던 대형마트와 편의점, 백화점은 나란히 하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이들은 중소기업과의 협력,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 등의 문항이 포함된 공익 경영 부문에서 유독 낮은 점수를 받았다. 편의점은 56.1점으로 전체 하위 1위에 그쳤고 백화점과 대형마트도 각각 하위 4위, 7위에 머물렀다. 동네 빵집과의 경쟁구도 속에서 한 해를 보낸 제과업계도 공익 경영 부문에서 하위 10위였다.

짝퉁 제품을 팔다가 잇달아 적발돼 구설수에 올랐던 소셜커머스는 진정성 경영에서 58.8점을 받아 최하위에 머물렀다. 전체 진정성 경영 지수 평균(63.5점)에 5점 가까이 못 미치는 점수다. 이 부문의 문항엔 ‘○○기업은 고객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킨다’ ‘○○기업의 제품(서비스)은 믿을 만하다’ ‘○○기업은 최고 품질의 제품(서비스)을 제공한다’ 등이 포함돼 있다. 소셜커머스는 배려 경영과 공익 경영에서도 각각 하위 3위에 그치며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식품 음료 제과 커피전문점 등 가격 및 위생 이슈와 밀접하게 연관된 업종도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밥 한 끼보다 비싼 커피’로 논란이 일고 은근슬쩍 가격을 올리며 소비자들의 눈총을 받은 커피전문점과 식품 업종은 ‘가격이 합리적인지’ 등을 묻는 진정성 경영 부문에서 나란히 하위 3, 4위를 차지했다.

김지현·김용석 기자 jhk85@donga.com

▼ “비싸더라도 ‘착한 상품’ 사고 싶다” ▼

■ 대기업 독주에 강한 거부감… 사회공헌 활동이 매출 좌우, 신입공채 경쟁률에도 영향

“국민에게 믿음을 주고, 사랑 받는 기업이 돼야 한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국민과 사회의 지탄을 받는 일을 하지 말자.”(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올해 초 주요 그룹 총수의 신년사엔 어김없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주문이 포함됐다. 착한 기업으로 인정받는 것이 필수 경영목표가 된 것이다. 이런 주문에는 ‘착한 기업이 경영성과도 좋다’는 명제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기업 관계자들은 “신년사에 담긴 구호가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까지 기업의 최우선 과제는 성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성장도 담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실제로 대기업의 독주를 반대하는 정서 때문에 대형마트, 베이커리 등 일부 업종은 신규 매장 출점을 제한하는 규제를 받게 됐다. 성장이 제한된 셈이다.

반면에 착한 기업은 성장의 호기(好期)를 맞았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약 73%는 가격과 품질이 비슷하면 윤리적 가치가 높은 기업의 제품을 사겠다고 답했다. 약 45%는 윤리적 가치가 있는 제품에 5% 이상 웃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미국의 공익경영 연구기관인 에티스피어는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WME) 145곳을 선정하며 이 기업들의 연간 주가수익률(PER·특정 기업의 주가를 주당 이익으로 나눈 수치)이 40% 중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에 포함된 일반 기업들의 평균은 이보다 30%포인트가량 낮았다.

착한 기업의 실적이 갈수록 좋아질 것이라는 인식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한동우 강남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가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회공헌활동이 매출 증가에 도움이 됐다는 답변이 2007년 18.9%에서 2011년 36.1%로 늘어났다.

착한 기업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다. 전상경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가 2010년 국내 기업 평사원 755명을 조사한 결과 기업 사회공헌을 잘 인지하고 있고 정책방향에 공감하는 직원일수록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자부심이 강하며 직장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 유한킴벌리에 입사한 노제원 씨(29)는 4대 그룹 계열사 중 한 곳에 동시에 합격했지만 유한킴벌리를 택했다. 그는 “유한킴벌리의 ‘신혼부부 나무 심기’ 등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공감해왔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마음을 정했고 매우 만족스럽게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문화분석가 린 랭커스터는 1982∼2000년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는 직장을 선택할 때 보수가 적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며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사표를 던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업이 인재를 붙잡으려면 높은 연봉보다 그 기업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두산그룹은 ‘인간 중심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운 ‘사람이 미래다’ 광고 시리즈를 내보낸 뒤 2011년 공채 경쟁률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뛰어올랐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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