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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 멋대로 운전 손익계산서

입력 | 2013-01-08 03:00:00

반칙男, 11분 먼저 도착했지만 19만원 ‘민폐’




[시동 꺼! 반칙운전] ‘헐크 운전’ 행태 실험


기자: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께 ‘반칙남’ 정모 씨(33)와 ‘양보남’ 강모 씨(54)의 레이싱 대결을 중계하기 위해 이곳 서울 종로구 종각역 사거리에 나와 있습니다. 두 분은 실제 매일 차량으로 영업하는 운전자입니다. 5일 오후 1시 이곳을 출발해 을지로입구역 사거리, 흥인지문, 회현 사거리를 찍고 2바퀴 도는 15.8km 코스를 누가 더 빨리 돌아오느냐를 겨루는 경기인데요. 반칙남은 경기 전 “수단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빨리 달리겠다”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양보남은 “교통법규를 지키고 정속 주행하겠다”고 합니다. 해설위원으로 서울연구원(옛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의 김원호 연구위원이 나와 있습니다.

해설위원: 먼저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선수에겐 한국개발연구원이 산정한 통행시간 가치에 따라 분당 212.8원이 상금으로 주어집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는데요. ‘반칙 운전’을 하면 그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비용만큼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흐름을 방해하지 말아야겠죠.

기자: 네, 말씀드리는 순간 신호가 울리고 두 선수 나란히 출발합니다. 반칙남 지그재그로 차로를 바꾸니 막힌 도로에서도 금방 앞서 나갑니다. 원래 차로를 따라가는 양보남보다 벌써 1분 거리인 220m나 앞섰습니다.

해설위원: 아무래도 덜 막히는 차로로 재빨리 끼어들면 빨리 갑니다. 하지만 끼어든 차로의 차량 3대가 반칙남 때문에 속도를 줄이는 상황이네요. 이 차들이 다시 시속 15km를 가속하려면 대당 2.08초와 휘발유 1.9cc를 더 들여야 합니다. 반칙남, 이미 차로 변경 7회로 사회적 비용 252원을 초래했습니다. 1분 앞서 나가지만 번 것보다 잃은 게 많은 셈이군요.

기자: 아, 저기는 직진 차로 아닌가요? 을지로입구역 사거리 직진 차로인데 대놓고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서 있네요. 직진하는 뒤차들이 경적을 울리는데 태연합니다. 정말 강심장이네요. 반칙남 바로 뒤차들이 짜증을 내며 옆 차로로 끼어들면서 연쇄적으로 흐름이 막히네요. 이런 차로 위반은 사회적 비용이 꽤 클 것 같아요.

해설위원: 정확한 지적입니다. 요즘 백화점 세일 기간인 데다 주말이잖아요. 통행량도 많은 날인데 지금 보니 반칙남 때문에 30대가량이 신호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3분을 허비하게 됐네요. 이 차들의 통행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1만9152원(30대×3분×212.8원)입니다. 차로를 위반해서 시간을 아꼈지만 전체적으로는 손실이 엄청 커요. 뒤차 운전자들의 정신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요.

기자: 반면 양보남 선수는 느긋합니다. 1바퀴 남겨둔 현재 반칙남에게 5분 거리나 뒤져 있는데요. 경기를 포기한 건가요?

해설위원: 빨리 달리려다 보면 급가속과 급제동을 반복해 연료 소모가 심하다는 걸 아는 거죠. 지금까지 양보남은 휘발유 소모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비용으로 환산해 보니 반칙남보다 204원 절약하고 있습니다. 페널티도 전혀 없어요. 앗, 그런데 반칙남 지금 뭐 하나요?

기자: 말씀드리는 순간 노란불인데 오히려 속도를 높여 교차로에 뛰어들었네요. 다른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난리네요. 위험천만한데요. 반칙남 차량에 같이 탄 채널A 카메라 기자는 “멀미 날 것 같다”고 짜증을 냅니다. 신호 위반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은 얼마죠?

해설위원: 저희가 조사했거든요. 2010년에 신호 위반으로 발생한 전체 사고의 건당 평균 처리 비용을 따져 보니까 1270만7265원이었어요. 사망자 처리 비용과 부상자 치료, 차량 수리, 경찰 행정처리 비용을 합한 거죠. 반칙남, 이런 거 알면 저렇게 못할 텐데요. 주의해야 합니다.

기자: 반칙남이 양보남보다 11분 33초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상금은 2458원(212.8원×11.55분)이지만 양보남보다 가감속이 잦아 연료는 170cc 더 소모하고 이산화탄소는 400g 더 배출했군요. 기름값과 이산화탄소 배출 비용을 빼면 최종 상금은 2049원이네요. 어쨌든 성과는 성과네요.

해설위원: 아니죠. 반칙남은 아마 남는 게 없을 거예요. 양보남은 차로 변경을 27번밖에 안했지만 반칙남은 68번이나 했네요. 거기에 아까 직진 차로에서 좌회전한다고 버틴 것처럼 차로 위반도 10번이나 돼요. 게다가 신호 위반도 5회 했어요. 천운으로 단속에 한 번도 안 걸리고 사고도 한 번 안 났다 해도 반칙남이 발생시킨 사회적 낭비 비용이 19만1013원에 달합니다. 반칙남 본인이 받은 상금의 78배나 되는 손해를 남들에게 끼쳤군요. (ㅎㅎ)

기자: 이번 실제 도로주행 실험에서는 규칙이 엄격해 자기가 발생시킨 사회적 비용을 반칙남이 물긴 했습니다만 실제 도로에선 그렇지 않죠. 반칙 운전의 피해를 다른 운전자들이 떠안잖아요. 이번 대회를 전체적으로 평가해 주시면서 이 문제의 해결 방법도 말씀해 주시죠.

해설위원: 이거 어려운 문제죠. 반칙 운전이 넘쳐나는 한 반칙남 본인도 결국엔 다른 운전자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을 떠안게 됩니다. ‘나만 빨리 가면 된다’는 생각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결국 모든 운전자가 목적지까지 늦게 도착한다는 뜻이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등 교통 선진국의 5.9∼47.0% 수준인 교통위반 범칙금을 소득 수준에 맞게 대폭 인상하고 벌점도 과감하게 부과하도록 도로교통법을 바꿔야 합니다. 반칙남이 스스로 ‘잘못하면 면허가 정지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야죠.

기자: 반칙남이 도로를 헤집고 다니며 입히는 손해를 우리 모두가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군요…쩝. 오늘 중계는 여기서 마칩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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