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씨 사망… 경찰 150명 장례식장 삼엄한 경계
김태촌 씨가 5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난해 1월 10일 기업인 협박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서울대병원에 가명으로 입원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도피성 입원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왼쪽). 5일 오후 김 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찰이 순찰을 돌며 경계했다. 동아일보DB·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6일 김 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은 수사현장을 방불케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폭력계를 비롯한 150여 명의 경찰이 장례식장 안팎에 배치돼 경계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서방파의 조직은 사실상 와해됐지만 김태촌이 가진 상징성과 과거의 정 때문에 폭력 조직원들이 찾고 있다”며 “나이 든 조직원이 많아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 씨의 장지가 전남 담양군의 한 군립묘지로 정해지자 전남지방경찰청도 경비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베테랑 조폭 수사관이었던 안흥진 국제조직범죄문제연구소 소장은 “전국의 조직폭력배들은 경조사 자리에서 사업 아이템을 논의하고 자기 세력도 과시한다”며 “강남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후배 몇 명이 김 씨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처럼 지역에 기반을 둔 보스 밑에 주먹으로 단결하기보다 이미 조폭들이 기업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김 씨의 사망이 주먹판을 뒤흔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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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의 오랜 친구인 야구해설가 하일성 씨는 “김 씨는 후배들을 챙겨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도왔다”며 “그의 참회는 진심이었지만 과거의 인생 때문에 모든 걸 편안하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1986년 인천 뉴송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을 흉기로 난자한 사건으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른 뒤 줄곧 수감생활을 했다. 1998년에는 가수 이영숙 씨와 ‘옥중결혼’을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5년 출소한 뒤에는 인천의 교회에서 집사로 활동하며 소년원을 찾거나 TV 등에 나와 신앙간증을 하고 청소년 교화에도 힘썼다.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광산군 서방면(현 광주)에서 자란 김 씨는 1975년 전남 광주 폭력조직인 ‘서방파’의 행동대장으로 폭력조직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린 시절 행상을 하던 어머니가 아무 잘못도 없이 깡패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빌던 모습을 보고 ‘주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건 이후 김 씨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뜻이 맞는 아이들을 모아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렸던 깡패들에게 복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77년 서울로 진출해 여러 군소 조직을 제압하며 세력을 키웠다. 정·재계는 물론이고 연예계까지 인맥을 넓히며 활동했다. 유신시대 정치폭력의 상징이었던 1976년 신민당사 난입 및 전당대회 각목 사건에도 연루됐다. 그가 이끌었던 ‘범서방파’는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 등과 함께 1980년대 전국 3대 폭력조직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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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갑상샘 질환 치료를 위해 2011년 12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지난해 3월부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5일 0시 42분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병상을 지켰던 부인 이 씨와 친누나, 조카, 부하 등 20여 명이 마지막을 지켜봤다. 발인은 8일 오전 6시. 장례는 교회식으로 치러진다.
박희창·박훈상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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