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형상을 부여하는 힘… 최고 작품에 대한 설레는 기대
장석남 씨(왼쪽)와 장석주 씨.
‘이모의 가까운 해변’ ‘골목을 들어올리는 것들’ ‘향리의 저녁 일지’ ‘발의 원주율’ ‘어제의 인사’ ‘끌어안는 손’ ‘오늘 너의 이름은 눈’ ‘친구들’ ‘가난한 오늘’ ‘迷路庭園’ ‘밀의 기원’ ‘꽃 앞의 계절’ 등을 최종심에서 읽었는데, 그것은 개성과 환유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속에서 무르익어 스스로 내면을 깨고 터져 나오는 시를 찾는 일이다. 익숙한 서정을 찾기 힘든 대신에 낯선 감각과 의도된 착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흐름은 주목할 만했다.
우리는 서너 편의 시를 손에 쥐고 오래 망설였다. ‘가난한 오늘’을 두 시간이 훌쩍 넘는 고심 끝에 골랐다. 신체 말단이 잘리고 헐고 바랜 자는 상처 받은 자이고, 그 상처는 가난의 흔적일 것이다. 일절 엄살이 없다. 아픔을 과시하는 헤픔을 절제하고 가난에 형상을 부여하는 힘은 정신의 야무짐에서 나온다. 시구와 시구 사이의 여백이 그 시적 물증이다. 수사가 덜 화사하고 주제가 소박했지만 아픔과 미망에 대한 표현의 간결함에서 사물에 감응하는 시인의 정직과 내핍의 염결성을 느꼈고, 그것에 깊이 공감했다. 이 시인의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게 분명하다. 지금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