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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뱀과 북방문화

입력 | 2013-01-01 03:00:00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권에서 뱀은 사악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에덴 동산에서 이브가 금단(禁斷)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 먹도록 유혹한 것이 뱀이다. 그때 저주를 받아서 뱀은 기어다니게 됐다고 성경에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서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뱀이다. 메두사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몰래 정을 통하다 아테네 여신에게 들켜 저주를 받아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다. 유교 문화권에서도 뱀은 환영받지 않았다. 용두사미(龍頭蛇尾)란 말에서 보듯 용을 숭상하고 뱀을 천시했다. 우리나라의 전통 민화를 보더라도 뱀을 그린 그림은 거의 없다. 까치를 잡아먹으려고 둥지에 접근하는 못된 구렁이 얘기는 있다. 그러나 그걸 그림으로 그려서 걸어두고 싶었던 사람은 별로 없었나 보다.

▷뱀의 이미지는 북방문화권에서는 대체로 좋지 않다. 그러나 남방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이나 멕시코의 마야 유적지를 가보면 거대한 돌난간에 뱀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인이라면 그게 용이 아니라 뱀이라는데 우선 놀랄 것이다. 이곳에서 뱀은 신(神)으로까지 추앙을 받는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만 하더라도 석가모니의 광배(光背)는 본래 코브라의 머리 형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 코브라가 똬리를 튼 위에 석가모니가 앉아 있고 그 뒤에서 석가모니가 비를 맞지 않도록 코브라가 머리를 들고 지키고 있는 조각이 남방불교에는 많다.

▷불교가 북방, 즉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조각도 변했다. 부처가 앉은 곳 아래 뱀이 똬리를 튼 곳은 연꽃이 받치는 형상으로 변했고 광배에도 뱀의 머리 형상 대신 연꽃이나 당초 무늬를 넣었다. 중국에는 뱀은 없어도 용은 많다. 용은 그 원형이 뱀이다. 사실 인도문화권의 코브라의 변형이라는 설이 있다. 북방문화권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니까 뱀을 몸통으로 하되 상상으로 치장한 용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더운 남쪽 지방에는 뱀이 많다. 뱀을 거부할 수 없다면 그것과 친해지는 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북방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북방 문화에 남방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십이지(十二支)에 뱀이 열두 동물 중 하나로 들어있다. 십이지는 중국 상나라(은나라) 말기 갑골문자에 처음 등장한다. 유교문화가 정착되기 전의 일이다. 성경에서 유대인을 이집트에서 끌어낸 모세의 지팡이는 던지면 뱀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의 지팡이에 두 마리의 뱀이 감싸고 있다. 우리나라 고구려 벽화 사신도의 현무는 뱀이 거북과 뒤엉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뱀은 북방문화권의 억압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올해는 뱀의 해다. 글로벌 문화 시대에 뱀은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상징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