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시간과 문명’ 심포지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은 21일 서울대 신양학술관에서 제17회 문명연구 심포지엄 ‘시간과 문명-시간의 인식, 활용, 표현’을 열고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시간을 살펴봤다.
몽골어로 된 가장 오래된 문헌인 13세기 중기의 ‘몽골비사’에는 주인공 칭기즈칸의 출생을 서술한 부분에 생년월일이 빠져 있다. 그 이유를 벽사((벽,피)邪·귀신을 물리침)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몽골인이 저주를 피하기 위해 생년월일을 숨겼다는 것이다. 유원수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유목 전통과 몽골인의 시간 표현’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유 교수는 “당시 몽골인은 어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아직 연월일로 표현하지 않고, 듣는 사람이 다 알 만한 다른 사건을 빌려 시간을 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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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묵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중국 고대사회의 시간 활용’ 발표를 통해 고대 중국에서는 제사 의례를 할 때 월일뿐 아니라 시각까지 세세하게 기록해 제사의 절차를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22년 신묘(辛卯)일 새벽(晨)에 태산 아래 남쪽에서 하늘에 요제를 지내고…. 식시(食時)에 이르러 산에 오르기 시작하여 일중(日中)이 지난 뒤 산꼭대기에 다다라 옷을 갈아입고 조포(朝포·아침과 저녁)시에 단에서 즉위하였다.”(‘후한서’ 제사지) 최 교수는 “‘후한서’에 태산에 오르는 일정이 자세한 시각으로 기록돼 있다”며 “제사가 일정한 시간표에 따라 통제되고 시행됐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그는 고대 중국 의학에서 시간을 치료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았음에 주목했다. 중국의 의학서 ‘황제내경영추(黃帝內經靈樞)’는 인체의 하루를 네 부분으로 나누고 한낮에는 정기(正氣)가, 한밤에는 사기(邪氣)가 성행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최 교수는 “고대 중국 의학에서는 하루를 계절에 빗대 아침은 봄, 낮은 여름, 저녁은 가을, 밤은 겨울로 보았다. 인체의 하루도 계절의 순환이라는 자연 질서에 순응한다는 관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태희 서울대 철학과 강사는 ‘근대 생활세계 시간의 위기’ 발표에서 “생활세계의 시간은 개인과 공동체, 문화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자연과학적 시간이 생활세계로 유입되면서 생활세계의 시간은 다양성을 상실하고 정밀성에 토대를 둔 단일한 시계시간에 의해 침식됐다”고 지적했다. 고일홍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도 기조발표에서 “자연과학적 시간이 사람들의 실천적 삶의 현장과는 동떨어진 맥락에서 형성되었다”며 “일상적 생활 경험과 자연과학적 시간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기고 심지어 후자가 전자를 통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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