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와유하는 것도 좋겠지만 최기남처럼 가난하지만 맑은 정신을 지녔던 분이라면 매화 화분을 무척 갖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매화 화분의 값은 결코 녹록지 않았기에 가난한 사람이 즐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보다 나중에 지은 시 ‘겨울날 서재에서(冬日書齋)’에서 “적막한 뒷골목길이라 찾아오는 이 없는데, 언 구름 훤한 눈이 뜰 귀퉁이에 어른어른. 청허(淸虛)가 과연 배를 채워 주림을 잊게 하기에, 주역(周易) 읽는 책상머리에 늙은 매화 두었다네(窮巷寥寥客不來 凍雲晴雪映庭외 淸虛果腹忘飢渴 讀易床頭有古梅)”라고 한 것을 보면 드디어 최기남이 매화 화분을 하나 구했나 봅니다. 최기남은 매화가 뿜어주는 청허(淸虛)로 배를 채울 수 있었기에 밥 대신 기꺼이 매화를 택하였겠지요. 이런 맑음이 부럽습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