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기록 잘 보존 보성 강골마을, 호남 첫 ‘기록사랑마을’ 지정소작대장-농사일기-서신 등 100년史 자료 전시관도 개관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마을의 열화정. 연못과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다. 옛것을 오롯이 간직한 강골마을은 최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5호 기록사랑 마을로 지정됐다. 보성군 제공
‘4월 2, 3일 논 고르고 6일 뒤뜰 논 고르고 18일 논둑, 5월 15일 모심고….’(농사일기)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마을 이용욱 가옥에는 1900년 초반 작성된 70여 쪽의 소작료 장부가 있다. 장부에는 소작을 준 논의 위치와 원래 정해진 소작료, 받아야 할 소작료, 소작하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 등이 적혀 있다. 1963년 이 마을 김종태가 남긴 농사일기에는 부지런한 농부의 일상과 관련 기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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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최근 강골마을을 ‘제5호 기록 사랑 마을’로 지정했다. 호남에서 기록 사랑 마을로 지정된 것은 강골마을이 처음이다. 이 마을은 고샅길과 100년이 넘은 한옥, 우물, 대나무 숲, 굴뚝, 툇마루 등이 남아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전통의 멋을 간직한 곳이다. 국가기록원은 민간 기록물을 관리하고 기록문화에 대한 주민 의식을 높이기 위해 기록 사랑 마을을 선정하고 있다. 2008년 제1호 기록 사랑 마을로 강원 정선군 함백역이, 2009년에 경기 파주마을이 2호로, 2010년 제주 서귀포시 안성마을이 3호로, 지난해에는 경북 포항시 덕동마을이 4호로 선정됐다.
기록 사랑 마을로 지정되면서 전시관도 개관했다. 전시관에는 100여 년의 마을 역사를 알 수 있는 원암공유묵(1899년 제작 추정), 소작대장과 농사일기, 1960∼80년대 교과서와 잡지 등 주요 기록물 500여 점이 보관돼 있다. 특히 이용욱 가옥에서 발굴된 고문서, 증조부 감찰기록, 소작증과 소작료 장부를 비롯해 이식래 가옥 아치실댁의 각종 영수증 등은 농촌사회의 실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1800년대 말부터 주고받은 서신, 공립중학교 졸업장, 중학교 입학고사 시험지, 앨범을 비롯해 마을의 장례 문화를 알 수 있는 장례용품, 생활기구, 농기구 등도 전시되고 있다.
○ 각종 기록의 보물창고
득량면 강골마을은 광주 이씨 집성촌으로, 현재 35가구가 살고 있다. 임진왜란 때 군량을 조달했다고 해서 득량(得粮)이란 이름을 얻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방조제 건설로 예당평야란 기름진 곡창을 갖게 됐다. 작은 마을이지만 인물이 많이 나와 이곳에선 벼슬 자랑, 머리 자랑, 돈 자랑을 하지 말라고 한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이곳에서 태어나 수학했고 6선을 한 이중재 전 국회의원과 대를 이어 2선을 한 이종구 전 의원도 강골마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을의 가옥 3채와 정자 1채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제162호인 ‘열화정’은 마을 고택들 중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곳이다. 보통 정자는 멋진 경치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열화정은 온통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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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