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들이 보내는 제언
이런 점 때문에 경제전문가들은 차기 대통령이 경제의 성장 잠재력과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경제정책의 틀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럽과 미국의 재정 불안과 신흥국의 성장 둔화로 세계경제 환경이 큰 불확실성에 빠져 있다는 점을 감안해 위기 대응의 자세를 더 단단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 “무리한 공약 과감히 걸러내야”
전문가들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무리한 공약마저 밀어붙이다가는 재정 악화 등으로 경제 전반이 회복 불능의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747 공약(7%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경제규모 7위)’의 숫자에 얽매이다 보니 경제정책에서 일부 무리수를 뒀다”며 “경쟁 과정에서 내놓은 무리한 선거 공약을 모두 지키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빨리 자신의 공약을 뒤돌아보고 국민의 이해를 구한 뒤 적극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박 당선인의 공약 중 국민행복기금 조성을 통한 가계 빚 탕감은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조장할 수 있고,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등 일부 의료분야 공약은 우선순위에 비해 재정 부담이 너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0∼5세 무상보육, 노인연금 신설, 반값등록금 등 공약들도 재원 대책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무분별한 재정관리로 위기에 빠진 남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강력한 재정 규율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원윤희 교수는 “어떻게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복지를 확대할 것인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이를 위해 미국 영국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다양한 ‘재정 준칙’을 연구해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성장의 불씨 꺼뜨리면 안 돼”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잠재성장률 저하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충분히 성장하기도 전에 일본처럼 장기불황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며 “중장기 성장동력 발굴에 힘쓰면서 복지 등 각종 재정소요 정책을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무엇보다 저성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경제민주화도 기존 시장경제의 순기능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정교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고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비스산업의 육성, 대외개방 기조의 확대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서비스 산업을 키워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가 의지를 갖고 서비스업 규제를 풀면 부가가치가 생기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재동·유성열·김철중 기자 jarrett@donga.com
▼ KDI도 OECD도 ‘장기 저성장’ 경고 ▼
최근 국내외 경제상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마음 편히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시간은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 저성장’ 국면에 처한 한국경제의 상황이 워낙 엄중하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이어진 위기국면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아 급한 불을 껐지만 남유럽 재정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재정절벽 문제 역시 정치권의 협상이 타결돼도 고질적 국가부채 문제가 모두 해결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고령화 추이, 중국과의 기술 격차 등을 봤을 때 2016년까지가 한국에 주어진 마지막 경제 도약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6년 3704만 명을 정점으로 2030년까지 약 400만 명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후발 경쟁국들의 추격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국내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과 중국의 산업기술 격차가 3.7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