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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루소에게 배워야 할 朴 당선인

입력 | 2012-12-20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올해는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 탄생 300주년이다. 루소 하면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하다. 사회계약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하나를 꼽으라면 ‘일반의지(la volont´e g´en´erale)’다. 선거란 루소 식으로 말하자면 한 사회의 일반의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일반의지는 쉬운 말로 ‘국민의 뜻’이다.

어제 끝난 대선에서 드러난 한국의 일반의지, 즉 우리나라 국민의 뜻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은 이것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도 일반의지가 눈에 보이듯이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그것이 어려운 점이다.

승자독식에 대한 반감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는 당선인 혹은 당선인의 공약에 대한 지지와 일치하지 않는다. 영국 정치철학자 존 로크에게 다수의 지지는 곧 국민의 뜻이다. 이것이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것이고 영미식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다수의 지배를 받아들이자면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all)의 문화에 대한 수긍이 있어야 한다. 우리 정치 제도도 기본적으로는 승자독식이다. 그러나 그 저류에는 독재 정권에서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승자독식에 강한 반감이 그치지 않았다. 국회에서 툭하면 벌어지는 날치기 논란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루소에게 있어서 정치는 국민 중 일부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명실공히 국민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국민 중 다수라 할지라도 루소에게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전체의지(la volont´e de tous)와 일반의지를 구별한다. 전체의지는 개인들의 의지의 단순한 총합이다. 예를 들어 복지 확대에 대해 찬반을 물었을 때 찬성 60%, 반대 40%라고 하면 서로 상쇄하고 남은 20%가 전체의지다. 결국 다수결인데 이는 일반의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의견 차이를 없애기 위해 타협안에 타협안을 거듭해서 의도한 것과는 다른 엉뚱한 결과를 낳는 합의를 끌어내는 것도 전체의지에 불과하다. 합의의 극단적 형태로 북한이나 중국의 인민대표회의에서 보는 만장일치도 물론 루소의 일반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는 다수결도 합의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다양한 의지가 상호간 차이를 내포한 채 그대로 드러남으로써 성립한다. 복지 확대를 원하는 사람도 국가 재정을 걱정한다. 국가 재정을 걱정하는 사람도 복지 확대를 원한다.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서로 다른 두 요소가 상충하고 있음을 느낀다. 상충하는 정도도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정당 등의 결사체는 오히려 그 너머에 있는 개인들의 다양한 차이를 은폐한다. 일반의지는 이 모든 개인적 차이를 다 고려한 것이다. 그래서 일반의지는 단순한 통계 수치로 주어질 수 없고 직관적으로 발견할 수밖에 없다.

지지자가 아니라 국민을 보라

선거일의 당락 결정과 득표율은 일반의지를 드러내는 실마리일 뿐이다. 그 전체 모습은 박 당선인이 그려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의 공약만이 아니라 아깝게 낙선한 후보의 공약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공약이 만들어진 과정을 찬찬히 복기해서 각각의 진정성을 검토해야 한다. 공약에 대한 국민들의 희망 강도도 따져봐야 한다. 모든 것은 결국 그의 통찰력으로 읽어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국회와 별도로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고 우리 헌법은 그 대통령을 초당파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300명의 구성원으로 나뉜 국회에서는 의원 각자가 지지자의 의견을 따르면 전체로서는 일반의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지만 1명뿐인 대통령은 지지자가 아니라 국민을 봐야 일반의지를 실천할 수 있다. 국민을 통합하는 대통령은 바로 이런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