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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서른살 베토벤, 보은의 초대장

입력 | 2012-12-19 03:00:00

■ 광주 음악감상실 ‘베토벤’ 21일 작은 음악회




1982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부근에서 문을 연 뒤 30년 동안 광주 시민들의 귀를 즐겁게 해준 클래식 음악감상실 ‘베토벤’. “시민들의 영원한 음악쉼터로 남고 싶다”는 주인 이정옥 씨가 낡은 LP판을 꺼내 보고 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베토벤 가족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음악회에 오셔서 한 해를 되새겨 보는 소중한 시간을 나누고자 합니다.”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금향빌딩 6층 클래식 음악감상실 ‘베토벤’. 주인 이정옥 씨(57·여)는 며칠 전 손님들에게 음악회에 초대하는 이 같은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베토벤은 올해로 문을 연 지 꼭 30년이 됐다. 한때 문을 닫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베토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삐거덕거리는 나무 마룻바닥, 낡은 LP와 턴테이블, 많은 이들이 앉아서 쉬어갔을 원목탁자와 의자…. 창밖으로 펼쳐지는 무등산을 바라보며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를 마시는 여유는 베토벤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다. 소설가 윤대녕은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문학동네)에서 ‘베토벤’에서 바라본 무등산과 이곳에서 들은 크라이슬러의 음악을 이야기했다. 세상을 떠난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 역시 베토벤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4년 전 이 씨는 갑자기 오른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심각하게 폐업을 고민했다. 그때 다시 감상실을 일으킨 건 이곳에서 음악으로 위안을 받았던 단골손님들이었다.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자 ‘베토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졌고 많은 이가 십시일반 기금을 모았다. 그리고 음악감상모임, 철학강좌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간 활성화에 도움을 줬다.

이 씨는 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21일 오후 7시 반에 작은 음악회를 연다. 베토벤을 기억하는 모두를 초대하는 자리다. 음악회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힘을 보탰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새미, 플루티스트 최지혜, 타악 주자 이왕재 씨가 흔쾌히 무료로 공연에 참여한다. 베토벤과 같은 건물에 세 들어 살고 있는 JS뮤직아카데미 원장 김성광 씨가 이끄는 재즈 트리오는 흥겨운 재즈 공연을 선보인다. 티켓 값은 무료다. 함께 음악을 즐기고 베토벤에서 준비한 과일과 떡, 차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나누면 된다.

이 씨와 함께 베토벤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클래식 마니아 안철 씨(63)다. 금호고 교사 시절부터 베토벤에서 다양한 음악감상회를 진행했던 그는 명예퇴직 후에는 아예 클래식 전도사로 나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빈 신년음악회로 시작하는 ‘영상음악감상회’(매주 화요일 오후 7시 반), 다양한 고전영화를 함께 보는 ‘목요영화감상회’(매주 목요일 오후 2시), ‘오페라·발레 감상회’(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반)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이 씨는 “다른 커피전문점에 비해 낡고 불편한데도 여전히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이라고 말씀해주는 분이 많아 힘이 난다”며 “시민의 영원한 음악쉼터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62-222-8410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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