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삼 논설위원
이런 기대가 크겠지만 정치학자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정책 차이가 적어서 오히려 상대에게 이분법적 이념 색깔을 덧씌우며 극한으로 충돌할 우려가 크다.”(임성호 경희대 교수) “대결의 정치가 계속되는 건 정책 차이 때문이 아니라 타협에 서투른 미성숙한 정치문화 탓이다.”(장훈 중앙대 교수) “19대 국회의 여야 간 이념성향 편차가 18대보다 큰 것으로 조사됐다. 대선 과정에서 중도화 득표 전략으로 미봉된 이념갈등이 선거 후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다.”(이현출 한국정당학회장)
정책보다 선거 승리 자체가 목적인 선거전문가 정당, 시민의 생활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페이퍼 정당, 모든 계층의 지지를 추구함으로써 어떤 계층의 이해도 반영하지 않는 무색무취의 포괄 정당.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 정당의 속성을 이렇게 요약했다. 정당들의 이념적 기반이 비슷하다 보니 내용도 없이 감정을 자극하고 적대적 열정을 동원하는 것 말고는 차별화 소재가 없다고 비판했다.
광고 로드중
2000년 미국 민주당 앨 고어 대선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이 지난주 은퇴했다. 그는 “정당의 양극화가 원칙 있는 타협을 가로막고 있다”며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초당적 정책 조율을 당부했다. 리버먼은 명연설로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을 막아냈고 동성애자 군복무 허용 법안을 주도했으나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 당론에 맞선 소신 행동으로 민주당 표밭인 지역구 예비선거에서 밀려났다.
미국은 지난 세기에 이미 주요 정치 어젠다를 확립했고 9·11테러를 계기로 대외정책에서도 여야의 지향점이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적 동질화로 반목의 골은 더 깊어졌다. 굵직한 정책보다 성(性) 정체성이나 종교관, 도덕성 같은 감정적 요소들을 정치적 논쟁거리로 삼기 때문이다. 민주당 출신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몰아붙일 때 보수적 민주당원보다 진보적 공화당원의 성원이 더 컸다는 건 이제 전설 같은 얘기다.
대선이 끝나면 잔뜩 부풀린 복지 공약의 실행과 우선순위 설정을 놓고 계층과 집단의 이해관계가 맞부딪칠 것이다. 정치인들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탈(脫)산업사회는 계층 정체성이 흐릿하고 계층 간 이동도 활발하다. 감성적으로 어느 한 계층을 대변하려다간 무익한 이념논쟁에 빠질 수 있다. 구체적인 정책 하나하나를 놓고 머리를 맞대면 타협을 끌어낼 수 있으나 눈먼 권력 의지가 끼어들면 승자 없는 정당 양극화의 길로 치닫는다. 내일 이후엔 어떻게 싸울 건가를 고민할 때가 됐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