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동아일보DB
“유럽에선 성적=수입, 포커스가 달라
성적 앞에 감독들 파리목숨 크게 잘못
구단 고위층들 부터 생각이 달라져야
MLS서 지는 팀도 인터뷰 신선한 충격”
이영표(35·밴쿠버 화이트캡스)가 한 마디 할 때마다 그의 에이전트가 연신 곤혹스러워 했다. 13일 서울 신문로 가든플레이스에서 열린 이영표의 기자회견. 그가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할 지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이영표는 “많은 분들이 은퇴를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기대를 저버리고 1년을 더 뛰기로 했다. 1년 후에는 반드시 은퇴할 생각이다”며 웃음을 지었다. 기자회견 1∼2일 전까지도 결정을 못 내릴 정도로 고민했다는 후문. 이영표는 “체력이 떨어지지 않은데다가 클럽에서 좋은 제안을 했다. 밴쿠버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1년 후에 행정, 재정, 운영, 마케팅 전 분야에 걸쳐 구단 안에서 직접 배우고 경험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말씀 하셨다”고 설명했다. 이후 기자회견은 이영표가 한국축구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생각 등을 두루 밝히는 쪽으로 흘러갔다. 당사자들이 들으면 섭섭해 할 정도의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영표 에이전시 지쎈의 류택형 이사가 “오늘 기자회견이 끝나면 여러 구단, 축구인에게 전화를 많이 받겠다”며 수위조절을 부탁했지만 이영표의 말은 거침없이 한국축구의 폐부를 찔렀다.
○성적 집착을 버려라
이영표는 “오늘 아침 K리그 감독이 (올해에만) 10명이 바뀌었다는 기사를 봤다. K리그 관계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사례다”고 말문을 열었다.
물론 축구 선진국 유럽에서도 성적에 따른 사령탑 경질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영표는 전혀 다른 경우라고 선을 그었다.
“영국은 성적에 따라 수입이 완전히 달라진다.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 그것도 못 나가는 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유럽은 앞에 드러나는 게 성적일 뿐 이면을 들춰보면 수입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감독경질이) 말 그대로 성적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포커스가 잘못 맞춰져 있다.”
K리그는 몇몇 팀을 빼 놓고는 기업, 시·도민구단을 막론하고 구단주나 시장 그리고 이들이 선임한 사·단장들이 자신의 재임 중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목을 매는 구조다. 이영표는 “감독 바꿀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팬이 우선이다
“유럽, 일본, 중동 심지어 축구 불모지인 미국도 관중이 많다. 왜 K리그만 관중이 없는가가 늘 궁금하다. 한국 국민들이 축구를 덜 좋아해서? 아니다.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은 어느 나라보다 크다. 이들이 경기장에 올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영표는 메이저리그사커(MLS)에서의 신선했던 충격을 예로 들었다.
“미국에서는 전반에 0-2로 지고 있는 팀도 하프타임 때 인터뷰를 한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왜? 팬이 궁금해 하고 팬이 원하니까. 한국도 바뀌어야 한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