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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보조기구로 공부하며 전국 0.7% 성적… 시각장애 5급 이준석 군의 ‘희망스토리’

입력 | 2012-12-11 03:00:00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꿈이 커요. 훌륭한 기업인 되어 시력연구 후원해야죠”
서울 대일외고 1학년




서울 대일외고 일본어과 1학년 이준석 군은 선천적 저시력증으로 교정시력이 0.125에 불과하지만 11월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 전국 0.7% 성적을 받았다. 이성은 기자 sunmin112@donga.com

10cm. 서울 대일외고 일본어과 1학년 이준석 군(16)이 공부할 때 책과 그의 눈 사이의 거리다.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남은 앳된 고교생이지만 선천적으로 시신경에 문제가 있어 교정시력은 양안 모두 0.125인 시각장애 5급. 태어날 때부터 저시력증에 난시, 색약, 안진(눈 떨림)까지 겹쳐 보통 학생처럼 책을 들여다볼 수 없다. 책의 글씨를 쳐다보면 그저 흰 바탕에 흐릿한 검은색 형체만이 아른거리는 것이다.

글을 읽으려면 코가 책을 스칠 듯한 거리까지 눈을 가까이 해야 한다. 학교에선 맨 앞자리에 앉아도 칠판 글씨가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물건을 4배 정도 확대해 볼 수 있도록 돕는 지름 3cm 렌즈가 달린 시력보조기구를 눈에 대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군은 놀랍다. 지난 11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 국어 수학 영어 사회탐구 네 과목 평균 1.4 등급으로 표준점수 합으로 전교 381명 중 4등을 한 것이다. 전국 고1 52만3768명 중에 0.7%에 드는 최상위 성적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겉보기엔 별반 다를 게 없는 이 군에게 시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이 군은 쉽게 친구들과 가까워지지 못했다. 바로 앞에 친구가 서 있어도 그냥 지나쳐버리거나 강한 태양광 아래서는 앞이 더욱 보이질 않아 축구도 농구도 친구들과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눈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된 친구들은 이 군에게 ‘너 안 보여?’라고 퉁명스럽게 내뱉기 일쑤였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 이 군은 난생처음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린 마음에 공부를 잘하는 방법밖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친구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이 군)

공부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시력보조기구를 샀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전 과목 100점을 받고 전교 1등을 했다. 자신 같은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이 군은 중학교 내내 전교 3∼7등을 오가며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중3 때, 그는 자신이 꿈꾸던 의사가 되기 어렵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됐다. 뚜렷한 원색만 구분할 수 있을 뿐 같은 계열의 색깔을 서로 구분하지 못하는 색약이라 그래픽을 읽거나 색을 구분하는 시각정보를 많이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계열 공부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절망에 빠진 이 군. 하지만 그는 집 근처 시력보조기구를 파는 가게로 갔다가 새로운 꿈을 발견한다. 자신이 사용하던 시력보조기구가 5년 전과 비교해도 성능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주인의 이야기를 들은 것. 이유를 물었더니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없으므로 새로운 기구를 개발해도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개발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는 주인의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엔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분노는 이내 오기로 변했다. ‘그럼 내가 그 일을 할 거야!’

“어떤 분야의 길을 걷든 저는 기업인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저처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거나, 시력보조기구나 줄기세포 같은 분야의 연구를 후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만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외국어고로 진학을 결심했죠.”(이 군)

전교 173등. 이 군이 외고에 진학해 처음 치른 모의고사의 성적이었다. 충격이었다. 공부량을 늘리려 했지만 쉽진 않았다. 친구들과 달리 그는 잠을 줄이며 공부시간을 늘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시력증이라 2시간 이상 공부하면 눈이 피로해지고 머리가 아팠다. 하루라도 밤을 새우면 이후 일주일은 후유증 탓에 어떤 책도 들여다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조금씩, 꾸준히,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독기를 품었다.

“제가 만약 눈이 좋았더라면 이만큼 공부를 했을까라는 생각도 가끔씩 해요. 그리고 또 생각해요.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저에게 주어졌다고요.”(이 군)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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