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꿈이 커요. 훌륭한 기업인 되어 시력연구 후원해야죠”서울 대일외고 1학년
서울 대일외고 일본어과 1학년 이준석 군은 선천적 저시력증으로 교정시력이 0.125에 불과하지만 11월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 전국 0.7% 성적을 받았다. 이성은 기자 sunmin112@donga.com
글을 읽으려면 코가 책을 스칠 듯한 거리까지 눈을 가까이 해야 한다. 학교에선 맨 앞자리에 앉아도 칠판 글씨가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물건을 4배 정도 확대해 볼 수 있도록 돕는 지름 3cm 렌즈가 달린 시력보조기구를 눈에 대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군은 놀랍다. 지난 11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 국어 수학 영어 사회탐구 네 과목 평균 1.4 등급으로 표준점수 합으로 전교 381명 중 4등을 한 것이다. 전국 고1 52만3768명 중에 0.7%에 드는 최상위 성적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겉보기엔 별반 다를 게 없는 이 군에게 시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이 군은 쉽게 친구들과 가까워지지 못했다. 바로 앞에 친구가 서 있어도 그냥 지나쳐버리거나 강한 태양광 아래서는 앞이 더욱 보이질 않아 축구도 농구도 친구들과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눈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된 친구들은 이 군에게 ‘너 안 보여?’라고 퉁명스럽게 내뱉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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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시력보조기구를 샀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전 과목 100점을 받고 전교 1등을 했다. 자신 같은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이 군은 중학교 내내 전교 3∼7등을 오가며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중3 때, 그는 자신이 꿈꾸던 의사가 되기 어렵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됐다. 뚜렷한 원색만 구분할 수 있을 뿐 같은 계열의 색깔을 서로 구분하지 못하는 색약이라 그래픽을 읽거나 색을 구분하는 시각정보를 많이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계열 공부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절망에 빠진 이 군. 하지만 그는 집 근처 시력보조기구를 파는 가게로 갔다가 새로운 꿈을 발견한다. 자신이 사용하던 시력보조기구가 5년 전과 비교해도 성능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주인의 이야기를 들은 것. 이유를 물었더니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없으므로 새로운 기구를 개발해도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개발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는 주인의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엔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분노는 이내 오기로 변했다. ‘그럼 내가 그 일을 할 거야!’
“어떤 분야의 길을 걷든 저는 기업인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저처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거나, 시력보조기구나 줄기세포 같은 분야의 연구를 후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만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외국어고로 진학을 결심했죠.”(이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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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약 눈이 좋았더라면 이만큼 공부를 했을까라는 생각도 가끔씩 해요. 그리고 또 생각해요.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저에게 주어졌다고요.”(이 군)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