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산군 벤처농업대학의 작은 기적
충남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의 벤처농업대학 캠퍼스. 금산=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올해 2월 말 충남 금산농업기술센터 강당. 벤처농업대학 교수인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전무가 갑자기 수업을 멈추고 눈물을 흘렸다. 늘 넘치는 에너지로 열정적 강의를 이어가던 그였다. 당황한 학생들이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이곳에서 나가야 한답니다. 더이상 수업할 장소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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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전무는 뜻을 함께하는 농업전문가들과 함께 2001년 이 학교를 세웠다. 위기에 빠진 한국 농업을 살리기 위해 흙에 ‘벤처정신’을 심어 강소농(强小農) 1만 명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에는 금산의 한 폐교를 빌려 주말을 이용해 수업을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금산군은 2003년부터 금산농업기술센터 강당을 무상으로 빌려줬다.
농업 전문가들이 농업 경영과 마케팅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져 농민은 물론이고 공무원, 농업법인 및 식품기업의 대표와 직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11기까지 졸업생만 총 2000여 명. 비(非)인가 학교지만 벤처농업대학은 한국 농업의 꿈이 잉태되는 보금자리로 거듭나고 있었다.
올해 초 문제가 불거졌다. 감사원이 “공공기관의 시설을 민간단체에 무상으로 빌려줘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금산군 공무원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감사원의 지적을 따라야 하지만 벤처농업대학에 대한 애정이 컸다.
벤처농업대학은 한 학기에 90만 원의 수업료를 받는다. 그러나 공부에 소홀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로 받는 ‘실비’ 수준이어서 건물을 짓거나 시설을 빌릴 돈은 없었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 대기업 후원을 받는 건 ‘벤처정신’에 위배된다는 게 운영진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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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중 한 명이 임야를 싸게 팔겠다고 나섰다. 건설업 경험이 풍부한 11기 졸업생이 공사를 맡았다. 7월 착공해 두 달여간 공사를 진행한 끝에 9월 15일 3300m² 땅에 교육장, 식당 등을 갖춘 ‘캠퍼스’가 완공됐다. 이달 초에는 12기 학생들이 입학해 새 캠퍼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제가 오히려 학생들한테서 ‘벤처정신’을 배웠습니다. 전 포기하려 했는데 학생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더군요. 초심으로 돌아가 ‘벤처농업정신’ 확산을 위해 더 열심히 강의해야겠습니다.” 민 전무는 이번 주말에도 새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밤을 지새울 예정이다.
금산=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