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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공감 Harmony]때론 물결 거세지만… 우린 행복 낚는 ‘낚시3代’

입력 | 2012-11-19 03:00:00

낚시로 소통하는 문강순 할아버지네 ‘세대공감법’




문강순 씨 가족이 11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백계구곡에서 낚시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 씨와 아들 성욱 씨, 손녀 다인 양과 손자 유현 군 3대는 자주 낚시 여행을 떠난다.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11일 일요일. 문강순 씨(70)는 직장인들이 늦잠을 즐기는 이날도 아침부터 부산하다. 새로 산 듯 반짝거리는 낚싯대와 릴, 낚싯바늘이 조용하고 능숙하게 움직이는 문 씨의 손놀림에 차곡차곡 제자리를 찾아갔다. 문 씨는 아들 성욱 씨(37), 손녀 다인 양(8), 손자 유현 군(5)과 함께 경기 양평군으로 낚시 여행을 떠난다. 문 씨의 차가 20분가량 떨어진 아들 성욱 씨의 아파트 앞에 서자 곧 손녀 다인 양이 아파트 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할아버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문 씨가 대답할 틈도 없이 뒷좌석에 뛰어오른 다인 양은 좀처럼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이윽고 손자 유현 군도 누나에게 질세라 아들 성욱 씨의 손을 잡고 서둘러 차에 오른다.

“할아버지, 오늘은 고기가 많이 잡힐까?” “아빠, 오늘은 나도 물에 들어가도 돼?”》

큰 키에 마른 몸매인 문 씨와 몸집이 큰 아들 성욱 씨는 얼핏 봐선 비슷한 점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차분하고 또박또박한 말투와 미소를 머금은 입술, 사람 좋아 보이는 눈매는 시간이 갈수록 거울처럼 닮아가는 두 사람이 낚시 여행과 함께 오랫동안 쌓아온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 아버지의 그림자를 낚다

 

[父]
광복이 되던 1945년 가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문 씨는 아버지를 따라 처음 낚시를 배웠다. 대나무에 실을 걸어둔 조악한 낚싯대가 전부였던 문 씨와 아버지는 허탕을 치는 날이 많았다. 물고기를 낚지 못하는 날이면 문 씨는 가까이 지나가던 돛단배를 탓하곤 했다. 배불리 물고기를 먹지 못하는 날이 많아도 어린 문 씨에게 낚시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평온한 날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6·25전쟁으로 문 씨의 가족은 부산으로 피란을 떠나야 했다. 문 씨의 아버지는 전쟁 통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사업을 일으켰지만 초기 반짝했던 사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울었다. 설상가상으로 고혈압을 앓게 된 문 씨의 아버지는 문 씨와 동생 둘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문 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돈을 벌었다.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던 동네 형으로부터 배운 오디오 수리기술로 당시 부산 시내에서 가장 큰 전파사에 일자리를 얻었다. 낮에는 학교에 나가고 밤이 되면 전파사에서 먹고 자며 오디오와 라디오를 고치는 고된 일이었다.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전파사에 남은 문 씨는 부품을 사다 직접 오디오를 만들어 팔며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문 씨는 두 동생을 대학에 진학시키고 군대를 다녀온 뒤에야 다시 펜을 잡았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졸업한 뒤 일본 전자회사 소니와 화신백화점을 운영하던 화신산업이 만든 합작 전자회사 화신소니에 입사했다.

평탄하지 않았던 시절을 보내면서도 문 씨는 낚싯대를 놓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전파상 일을 쉬는 날이면 밤새 구덕산을 넘어 낙동강까지 낚시를 하러 다녔다. 바쁜 대기업 사원 시절에도 주말마다 전국 각지로 낚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문 씨는 그에게 일찍 가장의 자리를 물려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낚았다.

[子]아들 성욱 씨도 문 씨로부터 낚시를 배웠다. 유치원을 다니기도 전이었던 다섯 살, 오랜만에 휴가를 받은 아버지를 따라 나선 강원 화천군 파로호에서다.

어린 시절 성욱 씨의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바빴다. 항상 밤늦게 퇴근하는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서도 안방 한구석에 마련해둔 작업공간에서 인두와 회로판을 놓고 씨름했다.

낚시는 성욱 씨가 바쁜 아버지를 독차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성욱 씨는 매주 토요일 오후면 일을 마치고 돌아와 낚싯대를 챙겨 밤낚시에 나서는 아버지를 뒤쫓았다. 아버지와 단둘이 먹는 라면, 함께 별을 헤아리며 친구 얘기며, 공부와 진로 얘기를 나누는 것이 낚시보다 좋았다. 든든했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밟으며 어린 시절 성욱 씨는 아버지처럼 전자공학자가 되리라 결심했다.

○ 놓아버린 낚싯대

[父]대기업에 입사한 문 씨는 승승장구했다. 고등학생 시절 독학으로 직접 오디오를 만들었을 정도로 좋았던 손재주에 대학에서 배운 이론까지 겸비한 그는 입사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입사 3년차에 직접 부품을 사 흑백TV를 만들면서 사내는 물론이고 합작사인 소니로부터도 기술력을 인정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니 본사에 연구원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화신소니가 무리한 투자로 파산하자 다른 대기업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1992년 독립해 전자부품 회사를 차렸다. 창업한 지 3년여가 지나자 회사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소니를 비롯한 해외 유명 전자회사에 전자 부품을 납품하는 그의 회사는 매년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번창했다.

회사가 커갈수록 문 씨는 낚싯대를 잡는 횟수가 줄었다. 공장일이며, 영업, 수출계약까지 모두 손수 꼼꼼히 챙기는 문 씨에게는 더이상 낚시를 다닐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창업한 지 3년이 지나자 그는 아예 낚싯대를 손에서 놓았다.

[子]아버지가 사업에 뛰어든 사이 성욱 씨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2002년 대기업에 입사하면서 자연스레 낚시와 멀어졌다. 국내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대기업에 들어간 성욱 씨는 경북 구미시에 발령을 받았다. 처음으로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그는 서서히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났다.

주말마다 함께 낚시를 다니던 아버지와 아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통화를 하기도 어려운 사이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넌지시 대를 이어 사업을 이어주길 바라는 문 씨에게 성욱 씨는 “회사를 물려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낙하산 인사라는 주변의 시선도 싫었지만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이룬 성취에 무임승차하고 싶지는 않았다.

 

▼ 할아버지 병환 뒤 다시 떠난 낚시여행… 아, 이것이 가족! ▼


○ 삶의 골짜기에서 다시 잡은 낚싯대

[父]기업가로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문 씨에게 이상 신호가 온 것은 2003년. 정상이었던 혈압이 갑자기 200mmHg(수축기)까지 치솟았다. 오후만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어려울 정도로 눈에 띄게 무기력해졌지만 병원을 찾아가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혈압에 뇌경색이 오고 나서야 병원에서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과 연결되는 동맥구조에 이상이 생겨 혈액의 4분의 1이 심장과 폐 사이로 흘러나가고 있다는 것.

2005년 심장 수술을 받은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회사를 유지해보려 했다. 하지만 뇌경색의 후유증으로 생긴 마비증상과 언어장애는 의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어렵게 성장궤도에 올려놓은 회사를 매각하고 말았다.

회사를 정리한 뒤 몸은 서서히 회복됐지만 문 씨에게는 수십 년간 쌓아온 경력과 성취가 하루아침에 끝났다는 허무함이 몰려왔다. 재기의 의지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문 씨는 다시 낚싯대를 잡았다. 낚시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플라이(fly)낚시를 시작한 것. 계곡이나 얕은 강물에 직접 들어가 물고기를 찾아낸 뒤 깃털이나 털실로 만든, 벌레 모양 인조미끼(fly)로 잽싸게 낚아 올려야 하는 플라이 낚시는 여러 낚시 기법 중에서도 가장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전국 각지의 계곡과 강을 찾은 그는 어느덧 플라이 낚시 이론서를 펴낼 정도로 전문가가 됐다. 그리고 그는 잃었던 건강과 함께 웃음을 되찾았다.

[子]문 씨가 병마와 싸우는 동안에도 성욱 씨는 아버지의 병세를 알지 못했다. 종종 전화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예전과 달랐지만 “별거 아니다”는 아버지의 말에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깜짝 놀라 한달음에 달려왔다. 수술을 마친 모습은 예전에 그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조용하면서도 강건할 것 같았던 아버지의 늙고 수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를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던 성욱 씨는 플라이 낚시에 빠진 아버지를 따라 다시 낚싯대를 잡았다.

문 씨는 요즘 근무지를 서울로 옮긴 성욱 씨와 1년에 대여섯 번씩 함께 낚시여행을 떠난다. 30여 년 전에는 문 씨와 성욱 씨 둘만의 여행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인 양과 유현 군도 늘 함께 따라 나선다. 다인 양과 유현 군이 역시 문 씨와 성욱 씨처럼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낚시를 배웠다. 유현 군은 아직 낚시에 서툴지만 다인 양은 벌써 플라이 낚시에 입문해 혼자서도 제법 큰 물고기를 낚는다.

다인 양과 유현 군에게 할아버지는 늘 친구처럼 반가운 사람이다. 말수가 적은 문 씨가 어려울 법도 하지만 오랜 낚시 친구인양 등을 타고 놀며 다인 양과 유현 군은 학교에서 만난 친구 얘기며, 어제 본 책 얘기를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문 씨와 성욱 씨에게 낚시는 가족이다. 성욱 씨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오래전 세상을 떠난 문 씨의 아버지부터 새로 가족이 된 가인 양과 유현 군 4대를 끈끈하게 묶어주는 낚싯 바늘처럼 단단한 고리다.

“낚싯대를 다시 잡고 나서 다시 찾은 게 참 많아. 건강도 행복도….”

낚시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문 씨는 피곤한 듯 잠에 빠진 다인 양과 유현 군을 보며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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