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첨제 도입 취지 무색
‘동네 유치원 서너 곳에 지원하면 한 곳 정도는 당첨되겠지’라고 A 씨는 생각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난주 세 곳의 입학설명회에 갔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추첨 날짜와 시간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같았다. 한 곳은 당첨되는 즉시 계약금으로 24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유치원에 가도 돌려주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유치원 입학 과열 경쟁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겠다며 2013학년도부터 원아모집 방침을 바꾸자 유치원들은 꼼수로 맞서고 있다. 추첨제를 의무화하자 인근 유치원끼리 추첨일을 담합한다. 또 입학도 하기 전에 미리 돈을 내게 한다.
하지만 교과부의 구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추첨일과 시간을 담합했다. 그뿐 아니다. 추첨장에 아이를 반드시 데리고 오게 했다. 복수 지원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다.
내년에 유치원에 가는 연령대의 아이들은 135만 명인데 수용인원은 70만 명이 안 된다. 그나마 공립은 13만 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공급이 부족한데 한 곳만 지원했다가 추첨에서 떨어지면 당장 아이를 보낼 곳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학부모들이 유치원의 횡포에 맞서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년에 복직을 앞두고 지난주 유치원 입학설명회에 참석한 B 씨는 “설명회가 끝나니 원장이 엄마들을 한 명씩 따로 부르더라. 미리 성의 표시를 하면 추첨에서 유리하게 해주겠다고 하던데 이게 부정입학을 시켜주겠다는 뜻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설명회에서 이런 황당한 상황을 겪은 학부모들은 교과부와 시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뾰족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C 씨는 “교과부와 시교육청 모두 지역교육청 일이라고 미루더라”면서 “유치원 입학설명회가 이번 주말에 대부분 몰려 있는데 교육 당국이 강력히 지도감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