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펠츠만, 17일 고양국제음악제서 협연
러시아 전통을 간직한 ‘바흐 스페셜리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 그는 “좋은 음식과 좋은 와인을 즐긴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고양문화재단 제공
바로크에서 20세기 현대음악까지 방대한 레퍼토리를 아우르지만, 펠츠만 자신이 “일생을 헌신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바흐다. 그는 “바흐 음악은 모든 형태의 언어를 초월하는 울림을 지녔다. 그 음악을 이해하면 자동적으로 다른 음악도 알게 된다”고 말한다. 17일 한국 무대에서 바흐를 들려줄 펠츠만을 e메일로 만났다. 이번이 네 번째 내한 공연.
“바흐는 내게 음악적으로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친 구명밧줄입니다. 바흐는 내 삶을 지탱하고 키워온 원천이지요. 바흐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입니다.”
19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마르게리트 롱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유럽과 일본 등지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냉전 시대 소련의 상황에 눈을 떴다. “나는 참을성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사회 시스템이 몹시 힘들었습니다. 리스트조차 퇴폐적이라고 비난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새로운 곡을 쓰거나 공연하면 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는 예술적 자유를 제한하고 압박하는 소련 정권에 불만을 느끼고 해외 이주를 신청했다. 그 결과 대중 앞에서의 연주와 음반 녹음을 금지당하는 등 8년간 ‘예술적 추방’과 다름없는 세월을 보냈다. 콘서트홀 대신 오전 10시에 유치원이나 공장에서 업라이트 피아노를 연주해야 했다.
이런 소식이 서방에 전해졌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펠츠만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다. 여러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끝난 뒤 마지막 곡을 연주할 차례. 스포트라이트가 아무도 없는 피아노를 비추는 가운데 음반에 담긴 펠츠만의 연주가 객석으로 흘러들었다.
1987년 미국 정계와 음악계의 도움으로 펠츠만은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고, 그해 백악관에서 첫 북미 리사이틀을 열었다. 미국에 정착한 펠츠만이 1992∼1996년 뉴욕에서 연 콘서트 시리즈도 바흐 건반 작품으로 꾸민 것이었다.
그는 뉴팔츠 뉴욕주립대 석좌교수이자 뉴욕 매네스음대의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한국인인 부인(혜원 펠츠만)도 뉴욕주립대 음대 겸임교수다. 펠츠만은 “아내와 개 네 마리와 함께 뉴욕에서 평온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한국 무대에서 그는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와 함께 바흐 피아노 협주곡 3, 7번을 연주한다.
“나는 어떤 작품의 ‘해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작품을 읽어내고 깨달을 뿐입니다. 이런 행위에 ‘자아’가 개입할 수 없어요. 음악이 나를 통해 말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둡니다. 나는 음악을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니까요.”
17일 오후 7시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2만∼5만 원. 1577-7766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