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공연 리뷰]쇼스타코비치, 객석을 휘젓다

입력 | 2012-11-08 03:00:00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 ★★★★




6일 게르기예프의 ‘분신’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마스트미디어 제공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의 내한 첫날 공연이 열린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이 ‘러시아 군단’의 체력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게르기예프가 자국에서 고착화한 ‘마라톤’ 연주회는 서울 무대에도 그대로 적용돼 앙코르까지 끝난 시점은 오후 11시였다.

지난해 게르기예프가 총감독을 맡았던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한 손열음의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은 물 만난 고기처럼 찰떡궁합을 이뤘다. 88개 건반 전체를 휘저으며 작곡가 특유의 리듬감을 꿰뚫는 해석은 놀라웠다. 특히 트럼펫 수석 티무르 마르티노프가 함께한 2악장 재현부는 늦가을의 처연한 정취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르기예프가 직접 가져온 ‘이쑤시개 크기’의 나무 지휘봉은 분위기가 고조되면 때로 객석으로 날아가기도 하지만 이날은 끝까지 그의 손에 잡혀 있었다. 이쑤시개의 날카로운 궤적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5번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작곡가 최후 교향곡의 난해한 실타래는 2악장, 첼로 독주와 금관의 코랄이 교차하는 대목에서 더할 나위 없이 단정하게 해체되었다. 또한 악기 배치를 공연마다 달리하는 게르기예프가 더블베이스와 첼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펼쳐놓은 효과는 대단했다. 저음이 무대를 횡으로 가르며 객석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는 장송행진곡풍의 4악장에서 극대화됐다. ‘게르기예프에 의한, 게르기예프의 공연장’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콘서트홀에는 지휘대가 아예 없다. 이는 내한 무대에도 그대로 적용돼 그의 무대에서의 활동반경은 더욱 넓어졌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의외였다. 17년 전 ‘비창’ 교향곡 음반으로 다이내믹의 극치를 들려주었던 것과는 간극이 컸다. 현(絃)은 세련돼졌으되 관(管)은 특유의 직관적인 야성미를 잃은 느낌. 2악장은 15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사유했지만 디오니소스적 감성과 아폴론적 이성의 조화가 부족했다. 장시간의 연주여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이었을까. 서유럽 오케스트라와는 다른 러시아 악단만의 그 무엇이 아쉬웠다. 이제 므라빈스키와 콘드라신의 차이콥스키는 정녕 듣기 어려운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역시 게르기예프 체제하에 있는 런던 심포니와는 다른, 마린스키만의 러시아 사운드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poetandlove@daum.net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