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멍난 원전 관리
그러나 이번 사건은 들여다볼수록 한수원의 원전 관리가 허술했다는 점이 드러난다. 사고처리 과정조차 ‘늑장 대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전사고 은폐, 납품 비리, 직원 마약 복용 등 올 들어 발생한 한수원의 근태 사건을 거론하며 “원전 관리의 총체적 허점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잦은 최근 원전 고장 정지를 놓고 한수원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의견도 나온다.
○ 영세 부품업체와 ‘대충대충’ 합작인가
엉터리 부품을 공급한 업체들은 일반 산업용 제품을 안전성 품목으로 인정하는 한수원의 제도를 악용했다. 한수원은 ‘Q등급’이라 불리는 안전성 품목 부품을 구할 수 없을 때 일반 산업용 제품이라도 해외 지정기관에서 품질 검증을 받았다면 Q등급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를 2002년부터 시행했다.
또… 고개 숙인 한수원 사장 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품질보증서가 위조된 원전 부품이 납품된 사건에 대한 정부 브리핑이 끝난 뒤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왼쪽)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한수원이 품질보증서 위조 사실을 처음 인지한 시점은 9월 21일이다. 국내 부품업체 중 한 곳이 “일부 업체가 평균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해외기관에서 보증서를 받아 온다”고 제보한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한수원에 등록된 부품업체만 수백 곳”이라며 “납품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서로 문제점을 들춰내 제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은 외부 제보가 있기 전까지 부품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수많은 부품을 자체적으로 일일이 검증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10년 동안 한 곳도 아닌 8개 회사가 부품보증서를 위조하고, 납품업체들이 이를 서로 의심할 정도로 관행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수원이 이를 과연 모르고 있었던 게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 내부직원 연루된 제2 납품비리인가
검찰 수사도 한수원 내부에서 품질보증서 위조를 교사하거나 방조하지는 않았는지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 감사실 측은 “아직까지 한수원 전현직 직원이 사건에 연루됐다거나 8개 업체에 한수원 퇴직자가 재취업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올해 초 고리원전 비리 사건에 연루된 업체도 없다”고 덧붙였다.
또 정부는 엉터리 부품이 사용된 원전 중에서도 영광 5, 6호기는 가동을 중단했으나 영광 3, 4호기와 울진 3호기는 위조부품 사용이 적고, 운전 중 교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가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지경부와 한수원은 이번 품질보증서 위조 사건이 최근 원전 고장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으나 실제로 고장이 일어난 시기와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상할 정도로 최근 고장이 잦아졌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고장 건수 9건은 지난해(7건)와 2010년(2건)을 합한 것과 같다. 특히 올해 고장 9건 중 8건은 7월 30일 이후 3개월 사이에 일어났고, 이 중 4건은 지난달 한 달 동안 일어났다.
▶ [채널A 영상] 단독/원전 직원들, 뇌물비리도 모자라 마약까지…
▶ [채널A 영상] 日대지진 그 후 1년…‘죽음의 땅’ 후쿠시마를 가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