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한 사회가 낳은 신풍속
자기계발을 위해 대학원에 다니는 젊은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가 낮에는 일, 밤에는 공부를 병행한다. 일각에선 미래가 불안한 사회가 낳은 또 다른 ‘스펙 쌓기’ 경쟁이란 지적이 나온다.
○ 신(新)주경야독 시대
동아일보가 잡코리아와 함께 잡코리아 홈페이지를 찾은 직장인 4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5명 중 1명꼴(22.4%)로 직장과 대학원을 병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대학원에 다니지 않는 직장인들도 64.1%가 ‘진학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대학원 병행을 택한 직장인들은 학비, 시간싸움, 부실한 커리큘럼이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큰 부담은 학비다. 학위 취득까지의 예상 학비를 ‘2000만∼3000만 원’이라고 응답한 이들이 전체의 32%로 가장 많았다. ‘3000만 원 이상’이라는 응답도 10%였다. 직장인들의 선호도가 특히 높은 MBA의 등록금은 훨씬 비싸다. 패션회사 5년차 직장인으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서모 씨(30)는 “한 학기 등록금이 1000만 원에 육박해 통장 잔액이 마이너스”라며 “매년 승용차 한 대씩 날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과 학업의 병행은 쉽지 않다. 교보생명 사회공헌팀에서 일하는 전지유 씨(30)는 8월 이화여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전 씨는 “2년 동안 일주일에 서너 번 퇴근 직후인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빠짐없이 들었다”며 “과제가 많다고 회사 일을 소홀히 할 순 없으니 2배의 에너지가 필요했다”고 털어놓았다. 응답자의 60.2%가 직장생활과 대학원 병행이 ‘크게 힘들다’고 답했으며 이 중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비율도 20.4%에 달했다.
경제대학원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 씨(31)는 토요일 수업에서 ‘농담 따먹기’만 하는 교수 때문에 황당했던 적이 많다. 그는 “힘들게 시간과 돈을 쪼개 갔는데 ‘대충 학위만 받아 가라’는 식의 수업이어서 회의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부담에도 직장인들의 대학원 진학은 계속 늘고 있다. 국내에는 직장인 재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특수전문대학원이 일반대학원보다 훨씬 많다. 특수전문대학원은 996개로 일반대학원(182개)의 5.5배에 이르고 정원도 5000여 명 더 많다. 입학생 중 직장인 비중이 95%에 이르는 국내 야간 MBA의 올 상반기 평균 모집경쟁률은 3 대 1로 주간(1.5 대 1)의 2배였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대학원 진학 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황선길 잡코리아 헤드헌팅본부장은 “정년 단축, 고용불안 때문에 한 곳에서 느긋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경쟁에서 뒤처질까 두려워 ‘학력이라도 높여 놓자’고 나서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들도 대학원 병행 이유로 자기계발(38.8%), 불안한 미래(24.5%), 이직 대비(18.4%) 등을 주로 꼽았다.
문제는 학위 취득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지 않으면 투자한 시간이나 비용만큼의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평생교육 활성화나 인맥 형성 측면에서 직장인들이 공부를 하려는 건 긍정적이지만 왜 굳이 시간, 돈, 노력을 들여 대학원에 진학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여유가 있을 때 학위나 따두자’는 생각으론 본인도 견디기 힘들 뿐 아니라 무의미한 ‘스펙 쌓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