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선을 앞두고 몸을 사린 기업들의 투자 위축이 한국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올 3분기(7∼9월) 설비 투자는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분기 이후 처음으로 2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설비 투자의 성장 기여도는 마이너스로 떨어져 ‘투자 위축이 성장 걸림돌’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기업 투자 부진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2.4% 경제 성장이 물 건너가고 경기 침체가 오래 지속될 공산이 크다.
기업의 투자 부진은 세계 경기 침체로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과 관련이 깊다. 자동차와 전자 업종을 제외한 해운 조선 철강 산업과 같은 주력 산업의 실적 악화로 투자 여력도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을 앞두고 뜨거워진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워 기업의 투자 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대선후보들은 순환출자금지, 금산분리 강화, 계열분리명령제도와 같이 기업 지배구조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공약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국내 대기업들이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수십조 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대선 후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대선 때마다 대기업 규제 정책이 화두로 떠오르다 보니 대선이 있는 해에는 기업 투자가 선거 전에 위축됐다가 선거가 끝난 뒤 살아나는 경향을 보인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 말에 새로운 사업을 벌였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 특혜 시비에 휘말리거나 정책이 바뀌어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새 정부의 대기업 지배구조 개혁과 산업 정책이 나온 뒤에 투자를 하는 게 안전하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기업이 경제 외적인 정치적 변수로 몸을 사리면 적절한 투자 시점을 놓치고 경기 회복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선거철에 기업들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장 논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진정한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