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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朴부장 “나 아니면 안된다”… 金과장 “아직도 그런 생각하세요?”

입력 | 2012-10-30 03:00:00


영화 ‘회사원’

영화 속 내용을 뒤집어 읽어 보면 의외로 놀라운 교훈을 얻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늑대와 춤을’을 보자.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로 뽑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지나친 호연지기는 오히려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 교훈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인 던바 중위(코스트너)는 충분히 군대 내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순수의 삶’을 추구하는 인디언들과 만나는 바람에 속세를 구차히 여기면서 멀리하게 되지 않는가 말이다. 지나친 호연지기는 하루하루 ‘현실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겐 때론 ‘독’이다. 요즘 신세대 직장인들을 보라. 인도나 네팔 지역에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아, 이 위대한 대자연 앞에서 나는 고작 대리로 승진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니, 얼마나 부질없는가’라며 왕왕 직장에 사표 던지고 나와 결국엔 무지하게 후회하지 않던가.

최근 1000만 관객을 넘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9월 개봉)에도 중요한 교훈이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가 바로 그것이다. 광해(이병헌)가 자신을 똑 닮은 광대 하선을 자신의 대역으로 내세우지만, 결국 어떤가. 멍청해 보이기만 하던 그 광대는 결국 광해 이상으로 선정(善政)을 펼치지 않는가 말이다. 회사의 수많은 차장, 부장님들이여. 지금 ‘나 아니면 이 회사 바로 망한다’고 굳게 믿고 계시진 않은지. 명심하라. 나를 대체할 인재는 세상에 넘쳐난다는 사실! 절대 자리 비우지 말 것! 왕도 대체 가능한데 부장 자리 하나가 대체 안 될까?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도 나 같은 직장인들에겐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영화가 차장, 부장 같은 직장 상사들에게 주는 교훈은 이거다. ‘부하 과장을 특히 조심하라!’ 이 영화 속에서 킬러들로 이뤄진 ‘회사’에서 ‘과장’ 직급을 가진 소지섭은 결국 회사를 떠나려는 자신을 동료들이 제거하려 하자 각종 자동화기로 무장한 채 회사로 들어와 동료는 물론이고 차장 부장 이사 사장 등 상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 실제로 회사에서 ‘과장’들은 소지섭처럼 울분에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실무는 모두 맡아 죽도록 일하면서도 정작 업적은 차장, 부장들이 가져가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직장 상사들이여, 과장한테 잘해 주시길.

‘친구’를 만든 곽경택 감독의 신작 ‘미운 오리 새끼’(8월 개봉)도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가수 이적과 국민MC 유재석이 함께 부른 노래 제목인 ‘말하는 대로’가 바로 그것이다. 정말 세상만사는 말하는 대로 결과가 이루어진다. ‘입살이 보살’이란 말도 있잖은가. 19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피해자가 스스로 가해자로 변해 가는 미친 세상의 분위기를 놀라울 만큼 사실적이고 힘 있는 연출로 보여준 수작이지만, 관객의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틈도 없이 그저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개봉 한 주 만에 극장에서 내려가 버리고 말았으니….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된 한 백만장자 필립과 그의 도우미 역할을 하는 젊은 흑인 드리스가 나누는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담은 ‘언터처블: 1%의 우정’(3월 개봉)이란 프랑스 영화도 언뜻 감동 일색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매우 냉엄한 현실의 교훈을 남긴다. 바로 ‘돈이 없으면 우정도 없다’는 것. 만약 필립이 부자가 아니어서 최고급 차와 궁전 같은 집, 아무 데서나 펑펑 쓸 수 있는 돈이 그에게 없었다면 과연 드리스는 그의 배설물까지 치워주면서 그의 곁을 지켰을까? 효심도 돈에서 나오는 이 시대에 고작 우정인들 어떻겠는가 말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