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많은 개업의가 저녁에 병원 문을 닫고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으며 웰다잉 강의를 듣는 것도 그런 열성에서 나온 것이리라. 더 진지한 이야기는 강의 후 호프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듣게 되었다. 40대와 50대 초반의 의사들은 호스피스 치료나 완화 의료 등이 낯설어 환자들을 관련 의료기관으로 보내는 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고백도 했다.
환자 진단-치료에만 전념
서울대 병원 내과 의사 100여 명이 죽음학 강의를 처음 들은 것은 5년 전이다. 환자 진단과 치료에만 전념해 온 그들이 이런 강의를 듣는 것 자체가 생소했다. 전국 어디에서도 없던 일이다. ‘의사들도 죽음을 알아야 한다’며 강의 개최에 앞장 선 의사가 정현채 교수다. 죽음학 전문 교수를 초빙해 의사들에게 존엄한 삶의 마지막 마무리란 무엇인지를 설명하도록 했다.
“옛날에는 천둥과 번개를 하늘의 노여움으로 알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 실체를 파악한 뒤부터는 모두들 공포감을 덜 느끼게 되었지요. 죽음도 이해하고 나면 인식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의사들도 이를 알아야 환자들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투병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요.”
죽음이라는 문제를 오래 방치하고 외면하다 보니 말기 환자들을 만나도 주춤하며 물러서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의사가 된 지 20여 년을 훌쩍 넘어서야 죽음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최근에는 전공인 내과학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죽음학에 쏟고 있다. 서울대 의대 의예과 신입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죽음에 대한 인식’을 강의하고 본과 3학년 학생들과는 죽음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4학년 강의에서는 다른 교수가 ‘존엄사와 사회적 의사소통’이라는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이제야 의사 지망생들에게 죽음학 또는 생사학이라는 이름의 강의가 시작된 것이다. 전국의 다른 의대도 이를 따르고 있거나 뒤늦게 준비하고 있다. 죽음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관련 장면이 나오는 우리나라 영화를 보여 주면 눈물만 흘리는 게 문제였다. 정 교수는 이래선 안 된다 싶어 여러 대학에서 이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외국 영화들을 강의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제는 2번째 또는 3번째 암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암 생존자들을 어떻게 끌어안고 갈 것인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계속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고 그걸 털어 낼 요량으로 아예 검진조차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힘든 건 양쪽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는 생존자들에게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암 정보 교육에도 참가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호스피스 치료에 적절히 대응못해
최철주 칼럼니스트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