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창촌 터 갈등 푼 포장마차-재개발조합-구청 윈윈 방정식
‘청소년출입제한구역’이라고 적힌 가림막 사이로 빨간 불빛이 새어 나오던 서울 용산구 한강로 집창촌 터에 16일 오후 포장마차 25동이 들어서 있다. 용산역 앞에서 장사하던 포장마차들이다. 재개발 때문에 집창촌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조합과 용산구의 양보 덕에 공사가 시작되는 2014년까지는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서울 용산구 한강로 용산역 앞 집창촌은 수십 년간 긴 생을 이어오다 지난해 10월 재개발로 사라졌다. 올 7월엔 건물마저 철거돼 지금은 땅을 파고 자재를 나르는 공사차량만 수시로 드나드는 축구장 4개 크기의 공터로 변했다. 그 주변에 자리 잡았던 포장마차도 마찬가지 운명처럼 보였다.
하지만 포장마차들은 사라지지 않고 8월부터 과거 집창촌 터에 새로운 포장마차촌을 형성했다. 천막 아래 간이의자를 놓고 대충 세운 게 아니다. 10cm 높이로 나무 바닥을 깔고 전기선, 상하수도관, 액화석유가스(LPG) 배관을 완비했다. 자갈 바닥은 차가 지나가도 먼지가 나지 않게 검은 고무판으로 덮었다. 입구엔 폐쇄회로(CC)TV도 달았다. 메뉴도 다양하다. 떡볶이 꼬치 조개구이 부침개…. 이렇게 들어선 포장마차가 60m²짜리 15동, 16m²짜리 10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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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은 다른 방법을 궁리했다. 재개발 인허가권을 가진 용산구가 조정에 나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계를 잃을 위기에 처한 포장마차 업주들이 전국철거민연합회 가입을 고려한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강성 단체가 개입하면 철거가 지연될 뿐 아니라 ‘제2의 용산 참사’가 일어날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조합은 개발 면적 중 2년 뒤에야 공원 조성 공사를 시작할 지역을 떼어내 포장마차에 잠시 내주는 방안을 떠올렸다. 단, 공사가 시작되고 조합이 요구하면 전부 철거하는 조건을 달았다. 당장 생계를 잃을 위기에 처했던 포장마차 주인들은 조합의 제안을 환영했다. 이들은 점포별로 950만 원을 들여 수도 및 전기시설을 갖추고 월 50만 원가량을 경비 용역업체에 내며 장사하고 있다.
손님들은 어느 날부터 모여든 포장마차들을 신기해한다. 15일 오후 한 포장마차에서 두루치기에 소주를 기울이던 박모 씨(45)는 주인에게 “재개발되면서 역 앞 포장마차도 성매매업소와 함께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언제 다시 생겼냐”고 물었다. “포주들과 조폭이 손잡고 기업형으로 운영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손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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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집창촌 터에서 성매매업소를 운영했던 이들도 있다. 지금 D포장마차를 운영하는 A 씨는 7년 전까지 아가씨를 대여섯 명 데리고 있던 포주였다. 장사를 그만둔 건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 단속에 걸려 벌금을 물었고 ‘탕치기(성매매 여성이 선불금을 갚지 않고 달아다는 것)’도 몇 번 당했다. 결국 성매매에서 손떼고 포장마차를 차렸다.
구청과 조합, 포장마차 주인들이 서로 한발씩 물러서면서 공존의 지혜를 찾았지만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조합이 요구하면 군말 없이 철거하는 조건으로 자리를 내줬지만 포장마차들이 2년 뒤에도 버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포장마차 주인은 “2년 동안 바짝 벌어서 다른 곳에 가게를 차려야겠지만 그게 어디 쉽겠냐”고 했다. 조합 관계자는 “잘 해결되길 바라지만 약속한 시점이 오면 쉽게 물러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포장마차 운영에 조직폭력배가 개입하거나 조합과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도 폭력 조직 ‘용산역전 식구파’가 역 앞 포장마차에서 자릿세를 받고 재개발 이권에 개입하다 검거됐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포장마차촌에선 용역업체가 경비를 담당하는데 폭력 조직과 연계되지 않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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