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한 터치, 사진보다 정확
40년 넘게 식물원예학을 연구해 온 윤경은 서울여대 명예교수(69·사진)가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야생화의 생태와 약효, 재배법을 담아 책 ‘세밀화로 보는 한국의 야생화’(김영사)로 펴냈다. 서울여대 총장을 지낸 그가 정년퇴임 후 경기 이천 8264m²(약 2500평) 규모의 농장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관찰하며 기록해 온 결과물이다. 잡초와 돌투성이였던 불모지는 그동안 꽃과 채소, 포도원과 온실이 있는 작은 낙원으로 바뀌었다. 사시사철 다른 꽃이 피어나는 그의 농장엔 구절초와 벌개미취가 한창이다.
“식물학을 연구하면서 독일, 영국 등에서 펴낸 세밀화 도감을 많이 봐 왔어요. 1980년대 초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갔더니 복도에서 한 여성이 직접 그린 꽃그림을 팔고 있더군요. 부러워서 그 뒤 저도 세밀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는 초점이 한 곳입니다. 접사로 촬영하다 보면 한 부분만 잘 보이고, 다른 부분은 흐릿하게 나와요. 또한 꽃잎 속의 수술은 안 보이는 경우도 많죠. 반면 세밀화는 꽃의 속 부분 단면도까지도 보여줄 수 있고, 땅속의 뿌리도 그려 넣을 수 있어요. 요즘에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창조적인 세밀화가 유행입니다.”
윤경은 교수와 한국식물화가협회가 함께 펴낸 ‘한국의 야생화’에 실린 ‘꿩의비름’ 세밀화. 둥글고 분백색이 도는 원줄기가 곧추 자라 30∼90cm 높이에 이르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김영사 제공
“일반인들도 백화점이나 대학 부설 아카데미에서 세밀화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세밀화는 수채 색연필만 있으면 집안, 공원 등 어디에서나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부들도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정서적 안정을 찾게 된다고 말해요.”
국내 세밀화의 유행은 1990년대 말 ‘보리어린이 동식물도감’ 시리즈에서 시작됐다. 갯벌도감, 나무도감, 곤충도감 등을 펴낸 보리출판사는 최근에는 ‘약초도감’을 발간했다. 2002년 감옥에서 길렀던 야생초를 그린 엽서를 모아 펴냈던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도솔)도 감성적인 글과 예술성 높은 세밀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