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 파리 특파원
지난해 10월 야당이던 사회당의 대선후보가 결정되기 전 여당 중진의원의 수석보좌관인 친구에게 물어봤다. “국정 경험이 전무하지만 중도에 가까운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와 대도시 시장과 장관까지 지낸 강성 좌파 마르틴 오브리 당대표 가운데 누가 후보가 되는 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유리할까?” 친구는 “당연히 오브리다. 올랑드가 되면 부동층과 중도표를 더 많이 빼앗기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프랑스 대선은 사르코지와 올랑드의 싸움이었다기보다는 사르코지냐, 아니냐의 대결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대다수 선거전문가들이 올랑드의 승리를 점쳤던 이유는 올랑드의 지지율보다는 줄곧 70%에 육박했던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선거의 상수는 ‘사르코지’였다. 대선 이후 한 여론조사에서 올랑드를 찍은 응답자의 70%는 “올랑드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르코지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선진국 선거에서도 유용함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일 것이다.
사르코지는 불법 대선자금, 무기 리베이트 스캔들에 연루됐고 부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돈에 미친 소아병적인 콤플렉스’를 가진 한 극우 정치인으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정을 살린다며 연금수령 연령을 늦추고 노동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국민은 그런 먼 길을 내다볼 만큼 한가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랑드 후보는 연소득 100만 유로 이상 슈퍼부자에게 75%의 소득세를 과세하고 최고소득세율도 41%에서 45%로 올리겠다는 포퓰리즘성 공약을 내놓았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다시 벌어졌다.
여론조사는 어땠을까. 워낙 정확하기로 정평이 난 프랑스의 여론조사는 조사 기관에 따라 근소한 지지율 차이만 나타날 뿐 후보의 순위가 다른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가 보수층이 막판에 대거 결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결선투표 전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올랑드는 사르코지를 6∼8%포인트 차로 앞섰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3.3%포인트 차로 절반이나 줄었다. ‘숨은 3∼4%’가 있었던 것.
사르코지 진영에서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놓고 국민에게 과거 스캔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했더라면…” “만약 사회당 후보가 오브리였다면…” 등의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