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한’ 듀오 십센치는 “대학축제에 가면 ‘아메리카노’보다는 야한 노래가 호응이 더 크다”며 “이번에 가게 되면 야하고 끈적한 ‘오늘밤에’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2일 오후 가을 햇살에 나무그늘이 드리운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 2인조 인디밴드 ‘십센치(10cm)’가 담배 한 개비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권했다. 지난해 ‘아메리카노’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등으로 인기를 얻었던 이들이 정규 2집 앨범 ‘2.0’을 냈다. 보컬을 맡은 권정열(29)이 말문을 열었다.
“앨범 리뷰 보셨어요? ‘트렌디에서 클래식으로.’ 기가 막히게 정확한 평이에요. 복고풍으로 탁한 사운드를 담았어요. 자연스러우면서도 투박하고, 농익은 섹시함? 1집이 이성을 유혹하려고 풀어헤쳐서 속살을 보여주는 거라면 2집은 어깨끈 하나 내린 정도라 할까요.”
“추억이에요. 녹음하면서 옛날 생각을 많이 했죠. 정갈하고 세련된 느낌보다는 원초적이고 ‘날것’ 느낌이 나게 하려고 했어요. 소매가 기타에 스치는 소리부터 기타를 치는 제 숨소리까지.”
둘은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과 정반대다. 권정열은 한낮에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 윤철종은 한밤에 친구들과 술 마시며 ‘으쌰으쌰’ 하는 마초적 스타일이다.
“무대에서는 성향이 달라져요. 놀 땐 여자 같은 제가 무대에선 세지죠. 철종이 형은 무대에선 부끄럼을 타는 것 같지만 사실 마초예요. 아, 철종이 형은 닭볶음탕, 갈비찜도 할 수 있으니 반전이죠. 하하.”(권정열)
타이틀곡 ‘파인 생큐 앤드 유(Fine thank you and you)?’는 옛 연인을 추억하는 애틋함을 표현한 노래다.
지난 앨범에서 선보였던 야한 감성은 2집에서도 그대로다. 다만 엉큼했던 야한 가사가 이번에는 아름답게 표현됐다. 수록곡 ‘오늘밤에’엔 윤철종의 내레이션이 들어갔다. ‘미치도록 한적한 스탠드바에…. 우리 과거는 묻지 않기로 해. 어차피 우린 남이잖아….’ 처음 듣는 이들은 온몸이 간지러울 수 있는 내레이션이다.
“내레이션 녹음하는 게 제일 재밌었어요. 최성수의 ‘누드가 있는 방’ 노래에서 영감을 받았죠. 하드보일드(감상에 빠지지 않고 간결하게 묘사하는) 감성으로 녹음했습니다. 어미와 콧바람 하나까지 신경 썼어요.”(윤철종)
“야한 건 우리가 건강하단 거죠. 우리나라엔 그런 소재가 너무 없어요. 시각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지하철에서 여자 다리 보며 가사를 지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오히려 더 야하게 갔어야 한다고 하더군요(웃음).”(권정열)
어느새 재떨이에 소복이 쌓인 원두가루 위에 담배 예닐곱 개비가 꽂혔다. 리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얼음만 남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들이 앨범 CD에 무언가를 적어 건넸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