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관심은 돈과 정규직뿐… 운명의 주인이 되라
고미숙 고전평론가
인류의 역사는 이 모순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지난한 여정이었다. 자유인과 브라만, 귀족과 선비 등이 독점했던 앎과 지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당연한 말이지만 삶의 주권이란 법적, 경제적 권리만이 아니라 철학과 사상의 자유까지 포함한다. 왜 그런가? 철학을 하고 사유를 해야만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자신의 삶을,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허하라! 이 명제를 부인할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디지털 혁명은 이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일을 수행해냈다. 이제 모든 정보는 스마트폰 안에 다 있다. 계급과 신분, 인종과 민족의 장벽을 넘어 누구나 이 정보의 바다를 유영할 수 있게 됐다. 인생의 진리, 위대한 현자들의 가르침, 무의식에 대한 탐구, 별들의 탄생과 죽음 등 이른바 ‘앎의 대향연’이 펼쳐진 셈이다.
이 지겨운 팔자타령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생역전이자 개운(開運)이다. 이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무엇을 더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가 아니다. 운명에 대한 온전한 주인이 되고 싶은가 아닌가일 뿐이다.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건 존재와 세계에 대한 해석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고, 혹은 타자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생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를 수 있는 것. 팔자타령이 ‘운명애(運命愛)’로 변주되는 순간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니 보라! 자신이 밟아가는 존재와 우주의 리듬을. 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 이는 운명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즉 봄과 앎과 사랑은 하나다.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