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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 무한헌신…무한폭력…영화가 만드는 신화를 거부하라

입력 | 2012-10-08 03:00:00


모성애를 보여준다면서 어머니의 무한 헌신을 강요한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위)와 복수를 한다면서 범죄자보다 더 범죄자적인 아버지를 그린 ‘테이큰2’. 얼리버드픽쳐스·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배트맨’ 시리즈의 6번째 작품인 ‘다크 나이트’(2009년 국내 개봉)가 위대했던 이유는 슈퍼 히어로인 배트맨이 ‘나는 영웅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영웅 신화를 스스로 의심한다는 이야기의 놀라운 충격 때문이었다. 위기에 빠진 시민을 구해주는 영웅이란 사실을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아온 배트맨은 어느 날 ‘법에 의거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범죄자들을 제거하는 게 과연 정의인가, 아닌가’라는 의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존재적 혼란(요즘 말로는 ‘멘붕’)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 달콤한 환상과 신화를 의심하고 거부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영웅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런 뜻에서 최근 국내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를 보고 매우 크게 실망하였다. 이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이젠 늙어버린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를 것이란 평가는 턱도 없는 소리란 생각이 들었다.

당초 나는 한 억척소녀가 우수에 젖은 눈빛을 한 늑대인간을 만나 사랑을 나눈 뒤 늑대아이 남매를 낳아 남몰래 키워낸다는 이야기를 담은 초반부를 보면서 그 절묘하고 아름다운 상상력에 공감할 뻔했다. 여성이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키워내기까지의 고난과 헌신을 ‘늑대남편’과 ‘늑대아이’라는 메타포(은유)를 통해 표현했다는 점에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본능을 이기지 못해 동물들을 사냥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늑대남편의 모습에는 아이를 잉태만 시키고 양육의 부담에선 벗어나려 하는 이기적인 수컷(남편)들의 모습이 겹쳐지지 않는가 말이다. 게다가 자라면서 1000번도 넘게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며 엄마의 마음을 늘 조바심으로 멍들이는 이 영화 속 늑대남매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분노했다. 자신의 청춘을 오로지 아이를 키워내는 데 바친 어머니가 결국 자식을 떠나보낸 뒤 죽은 늑대남편의 신분증 사진만을 바라보면서 여생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라니! ‘남편은 씨앗만 제공하는 존재이고 애 키우는 건 평생 어머니의 몫’이란 말인가. 게다가 아이들을 키워낸 뒤에도 죽은 남편만 생각하며 늙어죽으란 말인가. “아름다운 모성을 그려냈다”고 극찬한 평론가들이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여성의 무조건적 희생과 일부종사(一夫從事)를 강요하는 이런 봉건적 전근대적 가부장적인 이야기를 두고 “아름답다”니.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이 영화를 보면서 장뤼크 고다르의 명언이 떠올랐다. “관객이여, 영화가 만들어내는 모든 신화를 거절하라!”

같은 차원에서, 야성미의 대명사인 배우 리엄 니슨이 주연한 ‘테이큰2’(9월 27일 개봉)도 부성(父性)에 관한 잘못된 신화를 전파하는 불온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전직 특수요원 출신의 아버지 브라이언(리엄 니슨)이 딸을 납치해 간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한다는 1편에 이어, 아들과 형제를 브라이언에게 잃은 나머지 일당이 브라이언에게 복수를 다짐한다는 내용의 2편에선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딸과 전처(前妻)를 구해내기 위해 범죄 집단에 맞서는 아버지는 ‘가족을 구한다’기보다는 살육의 잔치를 통해 갱년기 남자의 스트레스를 실컷 풀어내는 것만 같다. 브라이언이 범죄 집단에 휘두르는 폭력이 범죄 집단보다 백배 천배 무자비하고 폭력적이며 ‘범죄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넘어 ‘눈에는 식칼, 이에는 도끼’에 가까운 응징으로 ‘오버’하는 이 막무가내 폭력을 우리는 ‘애틋한 부정(父情)’으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아버지에게 아들을 잃은 나쁜 놈 아버지의 부정은 또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ㅠㅠ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