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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 한줄]님이시여, 어찌 하오리까

입력 | 2012-09-08 03:00:00


《 “낚시꾼이 송어 14마리 늘어놓고 찍은 사진 봤어?”

―‘소셜 네트워크’(2010년)
일간지 기자의 일이라는 게, 가끔은 참 덧없다. 신문기사라는 상품은 그 가치의 수명이 채 하루를 가지 못한다. 제 아무리 대단한 단독 보도라도 게재된 날 점심경이면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흔한 얘기가 된다. 그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신문이 나온 지 30시간쯤 뒤면 가치가 거의 ‘0’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어제까지 뭘 썼건 간에 그게 오늘부터의 기사를 담보하지도 못한다. 물론 엄청나게 거대한 특종을 한다면 속보 경쟁에서 최장 보름 정도 유리한 고지에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대개 기자는 매일 아침마다 소총 한 자루 들고 새로운 전장에 투입되는 병사 같은 신세다. 전공(戰功)은 제작이 마무리되는 밤 12시 무렵에 ‘0’으로 리셋되고, 신문사 주변 술집들은 그 시간부터 붐비기 시작한다. 기자들은 어느 날엔 마감을 마친 후련함에, 어느 날엔 마감을 마친 허탈함에 술집으로 달려간다.

지금 쓰고 있는 기사가 독자에게 재미와 유익한 정보를 주고 사회 부조리를 바로잡는 데 일조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런 허무도 버텨낼 수 있다. 그런데, 솔직히 언제나 그렇진 못하다. 매일 출입처에서 사건 사고와 발표는 쏟아지는데 어느 순간이 되면 그게 다 비슷비슷해 보이고, 내가 쓰는 기사도 그게 그거 같다는 회의가 든다.

아마 기자뿐 아니라 다른 직업인들도 그런 고민을 엇비슷하게 하리라. 정신과 의사들도 그런 식으로 감정이 소진돼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지 못하게 되는 때가 있다고 들었다.

정말 의미가 있을 것 같은 기사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서 더 안타깝다. 다른 일을 접어두고 한 달만 매달린다면, 석 달만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뭔가 커다란 기사가 될 것 같다는 감이 오는 아이템들이 있다. 하지만 신문은 매일 나가야 한다. 그런 자유를 허락받기는 쉽지 않다. 나의 상사(데스크)들도 하루하루 지면을 채워야 하는 일간지의 구성원인 것이다.

멋진 홈런을 날리기 위해 몇 번이라도 삼진아웃을 당하고 안타 칠 기회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홈런보다는 출루율에 신경을 쓸 것인가. 정작 야구선수들의 고민은 상대적으로 가볍겠지. 홈런도 출루율도 정확히 숫자로 표시되고 통계가 나오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일들에서 우리는 멋진 홈런은 쉽게 떠올려도, 안타왕은 누군지 모른다. 심지어 자신들이 한 일을 평가할 때조차 그렇다.

냅스터의 설립자 숀 파커(저스틴 팀버레이크)는 페이스북의 진로를 고민하는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와 동료들에게 묻는다.

“낚시꾼이 송어 14마리 늘어놓고 찍은 사진 봤어?(You ever walk into a guy’s den and see a picture of him standing next to 14 trout?)”

저커버그 일행 중 한 사람이 말한다.

“아니요. 그런 사진은 보통은 3000파운드(약 1.36t)짜리 청새치를 한 마리 들고 찍는 거죠.(No, he’s holding a 3000-pound marlin.)

경영자나 투자자라면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겠다는 ‘롱테일 전략’을 취할 수도 있다. 그들은 야구선수와 공통점이 있다. 업적이 회계장부나 기록지에 숫자로 표시된다. 기자인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마감과 업무 압박에 잔챙이 송어만 낚고 있으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청새치를 쫓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어쩌면 잔챙이 송어를 쌓아놓고 찍은 낚시꾼 사진 봤느냐고 묻기 전에 파커가 저커버그에게 하는 말이 진짜 교훈인지도 모르겠다. “낚시를 하러 가면 잔챙이를 여러 마리 낚을 수도 있고, 대어를 한 마리 낚을 수도 있다”는 것. 송어 여러 마리와 대형 청새치를 동시에 다 낚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선택을 해야 한다. 송어를 버릴 배짱이든, 청새치를 포기할 냉철함이든 둘 중 하나가 필요하다. 오늘도 데스크는 홈런을 여러 방 치면서 안타도 많이 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tesomiom 송어보다는 청새치를 낚고 싶은 동아일보 기자입니다.

tesomio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