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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식당 세탁실 게스트룸을 공용으로… 한식구처럼 살아요

입력 | 2012-09-01 03:00:00

[아파트의 변신 Season 2]<2> 아파트 마을 만들기




집집마다 세탁기나 큰 책장이 필요할까. ‘마을 아파트’에선 세탁실과 도서관, 식당 등을 공유함으로써 작은 집에서도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세탁실에서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커피잔 혹은 책을 들고 창밖을 내다보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3D일러스트레이션 허길수 씨+Code NIne

나는 나이가 들더라도 도심에서 살려고 한다. 교외주택은 쾌적하지만 통근시간이 길고 에너지 사용량이 많다. 단독주택에 관심을 둔 적도 있지만 환경을 생각할 때 욕심껏 내 소유로 만들기보다는 공존의 삶을 실천하고 싶다.

내가 건축가이자 공동의 건축주가 될 이 집은 최소한 세 가구 이상, 많으면 50가구가 될 수도 있는 공동주택이다. 내가 꿈꾸는 것은 마당이 있는 집, 이층집, 천장이 높은 집, 경사지붕이 있는 집 등 가구마다의 특성을 헤아려 지은 한 가구 한 가구가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드는 집이다.

아파트가 처음부터 ‘현대 도시 소외’의 아이콘이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의 개혁가들은 아파트를 통한 사회개혁의 가능성을 보았다. 푸리에 같은 유토피안 사회주의자들은 단독주택이 고립적이고 낭비적이라고 비판했다. 개별적 주거가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는 데 가장 큰 장애요인이라고 주장하며 부엌과 육아실, 식당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통합주거를 제안했다.

○ 다양한 한 집, 한 집이 만드는 모자이크

여기에 소개하는 계획은 가상의 ‘아파트 버전 마을’ 만들기 보고서다. 마을 주민이 주체가 되어 ‘따로 또 함께’하는 삶을 회복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계획이다. 경제적으로도 이 사업이 가능한 이유가 있다. 첫째, 개발회사의 운영비용과 이익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둘째, 가구별로 3.3∼10m²(1∼3평) 정도의 면적을 할애해 식당과 세탁실, 도서관을 만들어 공유함으로써 여유로운 ‘작은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리고 싱글맘이나 홀몸노인 등 저소득 소외계층을 위한 주거 공간을 포함시켜 시정부의 임대아파트 지원 프로그램에서 비용을 지원 받을 뿐만 아니라 해당 면적만큼의 용적률도 완화 받을 수 있다.

마을 아파트 개발사업 용지는 도심 간선도로에 인접하되 40분 이내에 출퇴근이 가능한 곳으로 선정했다. 조합원이자 예비주민들이 낸 출자금에다, 공동체 명의로 저금리의 대출을 받아 용지 구입비와 건축비를 충당한다.

아파트의 설계 단계에선 젊은 가족과 싱글맘, 노부부 등 다양한 계층의 요구를 퍼즐처럼 맞춘다. 얼굴을 맞댄 설계회의와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은 나의 욕심이 이웃을 불편하게 하는 것과 한 평을 줄인 개인의 영역이 공공의 영역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줄 것이다.

○ 공동세탁실과 식당, 도서관 갖춰

마을아파트의 외관. 다양한 수직 동선과 공동 시설, 주민들의 활동이 어우러져 삶의 풍경을 이룬다. 3D일러스트레이션 허길수 씨+Code NIne

자!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자. 아파트공화국, 단지공화국을 공고히 하던 담장이나 경비실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 지역의 골목길이 용지 내부로 이어져 길과 공원, 커뮤니티 시설과 만난다. 인근 지역과 공유하는 이 시설들은 공공시설이 되고, 구청에서 가로등 설치와 함께 전기료도 부담한다. 이 길들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같은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이어져 각각의 집에 이르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공동시설을 만나기도 한다.

‘따로 또 같이’ 기능에 초점을 맞춘 80가구의 가구당 전용면적은 약 26∼99m²(8∼30평)으로 크지 않다. 그 대신 아파트 마을은 남부럽지 않은 공동시설을 갖추고 있다. 공동세탁실, 30여 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부엌, 도서관, 세미나룸, 유아원, 옥상정원 등의 시설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이를테면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돌려놓고, 부엌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들고서는, 도서관에 가서 연결된 세탁실을 보거나, 유아원의 아이를 투명창으로 내려다보면서 책을 볼 수 있다.

마을의 집들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개성적이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단독주택이 꼭 아름답거나 풍부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지혜를 알아야 한다. 그 지혜는 서울 북촌과 경기 성남시 판교를 비교하여 얻을 수 있다. 북촌의 한옥들은 비슷한 형태와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북촌이 획일적이라고 느끼거나 개성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다양한 집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판교는 사람들의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외양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구성에 대응하는 건강한 틀(구조)이다. 어느 정도의 틀 위에서 변형을 할 때 통일성을 기반으로 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아파트 마을의 집들은 평면적 개념인 평형으로 구분되지만, 엄밀하게는 볼륨(volume·부피감) 개념을 포함해 부담금이 정해진다. 사무실 같은 집, 스튜디오 주택, 이층 주거가 바로 볼륨이 높은 집들이다.

연세 지긋한 조합원이라면 삼나무같이 크게 자라는 나무가 도달할 수 있는 높이보다 낮은 데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래서 마을은 12층 내외로 보행 접근이 가능한 저층부와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고층부로 구성할 예정이다.


※본보에 소개된 아파트 설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필자 명단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②조남호 솔토건축소장 ③황두진 황두진건축소장 ④김광수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 ⑤정현아 DIA건축소장 ⑥김찬중 THE_SYSTEM LAB 소장 ⑦안기현 이민수 Ani_스튜디오 공동소장 ⑧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운생동 건축 대표 ⑨임재용 OCA건축소장 ⑩양수인 삶것(lifethings)소장

조남호 솔토건축 대표 mate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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