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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한국인은 ‘日王전쟁범죄’ 사면한 적 없다

입력 | 2012-08-27 03:00:00


황호택 논설실장

이명박 대통령은 3년 전부터 독도를 방문할 계획을 잡고 있다가 임기 말에 실행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실효적으로 우리 영토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두고 “불법 상륙” 운운하는 일본 정치인들은 한국 침략의 역사적 죄업부터 반성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일왕(日王)의 사죄를 직접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한국 내에서도 조금 다른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교사들에게 독도 방문에 관한 소회를 털어놓은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임을 감안한다면 일본인들이 흥분할 일만은 아니다. 일본인들은 일왕을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한국인은 일본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인 일왕의 피해자로서 당당하게 비판할 권리가 있다.

일본인들은 일본 왕실이 한국 침략과 전쟁범죄에 중대한 책임이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제국헌법에 따르면 국정 운영과 관련한 모든 권한은 일왕으로부터 나온다. 11조는 ‘천황은 일본 군대의 통수권자’라고 못 박고 있다. 일본 군인들은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동아시아를 유린했다. 그러나 더글러스 맥아더는 일왕과 왕족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왕실을 지켜줌으로써 일본인의 복종을 끌어내고자 했다. 총리를 지낸 도조 히데키는 “어떤 정부 관리도 천황의 뜻을 거역해 행동하지 않았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가 미군과 일본 관리들의 설득을 받고 증언을 번복해 일왕의 때를 벗겨주었다. 그는 전범재판에서 일왕의 죄목까지 뒤집어쓰고 처형됐다.

맥아더, 히로히토 ‘전범 소추’ 면제


맥아더는 일왕을 이용해 일본을 아시아에서 공산주의를 막는 전진기지로 만들고자 했다. 맥아더가 점령정책의 효율성을 위해 일왕 히로히토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오늘날 일본인이 전쟁범죄를 부인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줬다. 독일의 나치는 전후의 의회와 정부에서 일절 배제됐으나 일본에서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 같은 사람은 나중에 일본 총리가 됐다.

아키히토 일왕은 부왕(父王) 히로히토가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에게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일본 국민을 대표해 사죄할 책무가 있다. 일본의 전후세대가 “한국은 왜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문제로 우리를 괴롭히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이웃 나라에 고통을 준 침략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이 대통령의 위안부 언급을 겨냥해 강제동원의 증거를 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시모토 시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뉴욕타임스의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도쿄 특파원(현재 칼럼니스트)이 1995년 스즈키 다쓰고로라는 식당 주인을 인터뷰한 기사를 소개한다. 미군이 일본 본토에 진주할 때 25세였던 스즈키는 “일본 여인들의 순결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미군의 성적 배설장소를 만들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정부의 지원으로 그때 귀했던 침구를 구해 식당을 유곽으로 바꾸었습니다. 정부가 30명의 여성을 공급해줬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젊은 병사들의 성욕을 해결해주기 위한 위안부 배치를 일본 정부가 뒤에서 기획하고 실제 집행은 민간에 맡겼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일본군 위안소도 딱 이 방식으로 만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인 위안부는 돈벌이 욕심과 일말의 애국심이 뒤섞인 자의의 선택이었고, 조선인 위안부는 속아서 끌려간 성노예였다. 하시모토 시장에게 충분한 설명이 됐을지 모르겠다.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지 6일 만에 총리 관저에서 만난 각료들은 섹스에 굶주린 젊은 미군 병사들의 성적 욕망을 어떻게 채워주느냐에 관한 논의를 했다. 일본 각료들은 과거 자신들의 군대가 점령지에서 했던 대로 미군이 여성들을 눈에 띄는 대로 강간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본 정부는 미군 장병용 유곽을 설립하는 기구를 만들고 일본 여성들에게 미군 ‘위안부’로서 국가와 가족을 위해 애국적인 희생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과거 잘못 인정해야 화해 가능

일본군 부대에 본격적으로 위안소가 확대된 것도 난징 대학살이 일어난 1937년부터다. 아이리스 장이 쓴 ‘난징의 강간’에는 트럭을 타고 다니며 여성들을 나이에 관계없이 붙잡아 들여 집단 강간했다는 일본 군인의 회고담이 들어 있다. 1937년 12월 난징의 일본 군인들은 살인 기계에 섹스 야수였다. 일본군이 난징에서 수주 동안 고문 강간 살해한 중국 민간인과 군인은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사망자 수보다 많다. 그런데도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 같은 극우 인사는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한일합방은 한국인이 원해서 했다” 같은 망언을 밥 먹듯 한다.

우리가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위해 일본과 협력을 해나가야겠지만 영토와 역사문제에서는 양보가 있을 수 없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전제 위에서 화해나 용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