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산업부 기자
“시사 이슈에 무관심한 명품업계 종사자들이 선거철이 다가왔다는 사실만큼은 빨리 알아차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는 것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자에게 이들은 “평소 접촉이 없던 사회부 정치부 기자들이 특정 제품의 가격대와 모델명을 자세히 물어오기 시작하면 정치시즌이 왔다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정치인과 명품이 얽힌 이슈가 선거철을 맞아 수면 위로 드러났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마다 정치적 사건과 연루돼 관심을 모은 명품 브랜드들이 있다. 2002년 ‘최규선 게이트’ 때는 그가 검찰에 출두할 때 입었던 베르사체 슈트가, 2007년 ‘신정아 사건’ 때는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신 씨에게 선물했던 ‘반클리프앤아펠’ 보석이 화제가 됐다.
명품이 얽힌 정치적 사건들의 특징은 조연 격인 명품이 주연인 사건의 본질만큼이나 큰 임팩트를 주면서 결국 대중은 명품만 기억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현영희 의원의 공천 뒷돈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3억 원을 담는 데 쓰였다고 지목한 루이뷔통 가방이 유독 화제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정치인과 얽힌 명품을 스캔들로 보는 것은 서구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에서 선거 유세를 치르던 4월, 군중과 악수를 나누기 직전 차고 있던 롤렉스시계를 풀어서 호주머니에 슬쩍 집어넣는 모습이 포착돼 곤욕을 치렀다. 그는 평소 명품을 즐겨 사용해 좌파로부터 ‘블링-블링(bling-bling·번쩍이며 화려한) 대통령’이라고 조롱받고 있었다. 가뜩이나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고가의 시계를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명품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가 물바다가 됐을 때 뉴욕 맨해튼에서 ‘페라가모’ 구두를 사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다. 그는 ‘하필’ 이날 명품을 사고 있었기에 더 큰 비난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명품산업의 뿌리로 루이 14세를 지목한다. 패션 보석 등 모든 영역에서 궁극의 미(美)를 추구했기에 왕가를 중심으로 고급문화가 발달하는 토대가 마련됐다. 이처럼 출신성분 자체가 권력과 맞물려 있다 보니 명품은 권력과 비슷한 속성이 많다. 욕망의 대상이면서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명품에는 미덕도 많다. 장기적인 비전을 추구하고 최고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점은 범접하기 힘든 장점이다. 부디 새로운 권력은 당장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 명품의 장점도 닮아주길 기대해본다.
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