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열의 희생-동토의 눈물 잊지 않겠습니다안동 의성 김씨 내앞문중 ‘통합-혁신의 항일’ 재조명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15일부터 내년 2월까지 ‘내앞마을-독립운동으로 사그라진 겨레의 성지’를 주제로 여는 특별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안동=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의성 김씨 청계파 15대손인 김시중 씨(75)는 14일 독립유공자 자손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백하구려(白下舊廬·경북기념물 137호)에 살고 있다. 이 고택은 전 재산을 털어 한평생 독립운동을 펼친 백하 김대락(1845∼1915)과 함께 막내 여동생 김락, 조카 만식, 정식, 규식, 규식의 아들 성로 등 독립유공자 6명의 혼이 서려 있는 곳이다.
내앞 사람들이 활약한 한족회 총회와 관련한 독립신문 1919년 10월 4일자 기사.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제공
1910년 12월 내앞문중 일가 150여 명은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경학사 한족회 같은 조직을 결성해 한인사회를 이끄는 한편 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 등 독립군 양성기관을 열어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일제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무장 투쟁 노선을 지키면서도 중도 민족주의자로서 모든 이념에는 개방적이었다. 1930년대까지 고향에 남아 있던 내앞마을 사람들도 돈과 인력을 모아 꾸준히 독립군기지로 보내며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최근 이 같은 내앞문중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15일부터 내년 2월까지 ‘내앞마을-독립운동으로 사그라진 겨레의 성지’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 내앞문중의 눈물과 희생, 삶과 독립운동이 주는 의미, 그리고 그들이 지키려 했던 길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안동=장영훈 기자 j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