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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형삼]더 재미있어진 태권도

입력 | 2012-08-15 03:00:00


태권도인들은 런던 올림픽에서 두 가지 목표를 겨냥했다. 한국 선수들의 선전(善戰)과 태권도의 흥행 성공이었다. 제자리 뜀뛰기를 보는 듯한 지루함, 편파 시비가 끊이지 않는 판정, 한국의 메달 싹쓸이로 인해 태권도는 올림픽 퇴출 후보 1순위로 꼽혔다. 복싱 펜싱 유도 레슬링 태권도 등 5개 격투기 중 태권도는 가장 재미없는 종목으로 악명이 높았다. 내년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선 기존 올림픽 종목 중 1개를 빼고 8개 대기 종목 중 1개를 넣는다. 대기 종목 중엔 중국과 일본의 대표적 무술인 우슈와 가라테가 호시탐탐 틈을 엿보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태권도는 런던 올림픽에서 면모를 일신했다. 경기장을 가로세로 각 10m에서 8m로 줄이고, 10초 동안 공격하지 않으면 경고를 줘 수비 위주의 경기를 차단했다. 몸통 공격 1점, 머리 공격 3점, 돌려차기 머리 공격엔 4점을 주는 차등점수제로 역전 가능성을 높여 박진감을 더했다. 전자호구를 도입해 오심(誤審)의 여지를 줄였다. 선수가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면 6대의 카메라로 찍은 화면을 대형 스크린에 즉시 공개했다. 런던 올림픽에선 태권도 판정 시비가 한 건도 없었다.

▷바뀐 태권도 룰은 하나같이 한국 선수들에게 불리해 보인다. 머리 공격과 돌려차기는 다리가 긴 서양 선수에게 유리하다. 쉼 없는 공격을 요구하는 경기는 체력에서 밀리는 우리 선수에게 버겁다. 전자호구는 체급별로 일정 강도 이상의 타격을 가해야 점수가 올라가는데 이것도 힘이 좋은 외국 선수에게 더 나은 조건이다. 그래도 감수했다. 태권도의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자구책을 쓴 것이다.

▷흥행은 쏠쏠했다. 6000명을 수용하는 런던 올림픽 태권도 경기장은 예선 경기 때도 빈자리가 드물었다. 화려한 기술 대신 도복 멱살만 붙잡고 늘어지는 맥 빠진 경기로 흥미가 반감된 유도와 대조됐다. 태권도 경기를 직접 찾아가 봤다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경기 운영이 매우 조직적이고 재미있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예측불허의 살얼음 승부가 이어지면서 금메달 8개를 8개국이 나눠 갖고 21개국 선수가 메달을 목에 걸었다. 태권도의 영토를 그만큼 넓혔다. 한국은 금, 은메달 각 1개로 역대 올림픽 최저 성적을 냈지만 태권도인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