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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비닐하우스에서 일군 금메달

입력 | 2012-08-13 03:00:00


황호택 논설실장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메달 경쟁은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 돼가고 있다. 영국이 3위에 오른 것은 주최국 이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영국은 러시아 다음인 4위를 했다. 우리나라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선 4위를 했지만 홈 어드밴티지가 없는 런던 올림픽에서 한 5위가 훨씬 값지다. 일본을 꺾은 축구 동메달도 소중하지만 메달 순위에서 일본이 5위(아테네)→8위(베이징)→11위(런던)로 하강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9위→7위→5위로 상승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국가의 활력과 관련이 없지 않아 보인다.

엥겔스는 ‘양적(量的) 변화가 어느 한도에 이르면 질적(質的)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헤겔의 철학을 수용해 자신의 유물론으로 발전시켰다. 중국 사람들은 여기서 유래한 “양 속에 질이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인구가 많으면 우수한 체격 조건과 기량을 갖춘 선수도 많이 나오게 마련이다. 앞으로 올림픽에서 13억 인구의 중국은 금메달 수에서 1, 2위를 쉽게 내놓을 것 같지 않다.

스포츠 기자인 로라 벡시와 척 컬피퍼는 메달 수로 그 나라의 인구를 나누는 MPC(Medals Per Capita·인구 1인당 메달 수) 집계 방식을 만들어냈다. MPC 방식을 적용하면 인구 10만9000명의 소국으로 400m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딴 그레나다가 단연 1위다. 2위는 바하마, 3위는 자메이카. 중국은 47위로 밀려나있다.

인구와 경제력이 받치는 메달 수

경제력이 큰 나라일수록 메달을 많이 딸 가능성이 높다. 올림픽은 ‘쩐의 전쟁’이라는 말도 있다.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에는 복싱 레슬링 같은 격투기 종목에서 주로 메달을 건졌으나 요즘은 부모들이 하나나 둘뿐인 자녀에게 몸 상하는 운동을 시키기 싫어한다. 우선 종목의 이미지가 멋있어야 올림픽 꿈나무와 어머니들이 모여든다. 펜싱 리듬체조 피겨스케이팅 수영 사격 같은 게 대표적이다. 우리가 겨울 올림픽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우리의 소득이 높아지면서 겨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 메달은 국가가 얼마나 집중 투자하느냐와도 관련이 깊다. 북한, 옛 동독, 옛 소련의 사례를 보더라도 국가경영에는 실패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올림픽 메달 경영은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 동독은 망하기 전까지 5번의 올림픽에 출전해 153개의 금메달을 땄다. 동독은 마지막으로 출전한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에 이어 2위를 했고 서독은 5위였다. 그러나 서울 올림픽 이듬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독은 서독에 흡수 통합됐다. 런던에서 15위를 한 쿠바나 20위를 한 북한도 경제력에 비해서는 월등히 선전했다.

중국도 어릴 때부터 운동 천재를 뽑아 스파르타식으로 길러내고 있다. 런던 올림픽에서 혜성처럼 떠오른 여자 수영 천재 예스원이 대표적이다. 메달을 많이 딴다고 그 나라의 국격(國格)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올림픽에 인권이라는 종목을 만들어 놓으면 남의 나라 국민까지 고문하는 중국은 아마 100위 안에 들어오기 어려울 것이다.

메달을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누는 방식은 가난한 나라가 딴 메달을 더 가치 있게 쳐준다. 1인당 GDP로 메달 수를 따지면 중국이 1위이고 북한이 2위, 에티오피아가 3위, 한국은 13위다. 세계 2위의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는 올림픽 메달 수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스스로 높다고 믿는 국민이 많은 나라일수록 올림픽 메달 수에 대한 집착이 강하지 않다.

한국 선수들이 딴 메달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도마의 신기(神技)’를 보여준 양학선 선수가 따낸 금메달은 가슴 뭉클한 드라마였다. 그는 160cm라는 작은 키를 이용해 공중에서 3회전하는 1080도 비틀기의 초(超)고난도 기술을 개발했다. 태릉선수촌에서 하루에 4만 원씩 받는 훈련비를 모아 비닐하우스에 기거하는 부모에게 한 달에 80만 원씩 송금한 효심(孝心)도 메달감이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그의 효심과 청소년들의 역할 모델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해 5억 원의 격려금을 내놓았다. 빈부 격차가 커지고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탄식이 들리지만 한국은 비닐하우스에서 금메달을 일구는 나라다. 어떤 방식의 메달 집계로도 양학선과 같은 감동지수를 담아낼 수 없다.

빈곤 가정 청소년들의 역할 모델

한국인은 뭘 해도 잘하는 민족임이 런던 올림픽에서도 증명됐다. 메이드 인 코리아와 한류(韓流)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로 뻗어나가는 것도 한국인에게 남다른 집념과 창의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전(反轉)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 ‘도둑들’을 보면 한국 영화가 이제 할리우드의 수준을 따라잡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런던 올림픽은 우리가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멀리 뛸 수 있음을 보여줬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