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증세’ 세법개정안에 새 투자처 찾기 부심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국회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실에서 황우여 대표 등 고위당직자들에게 세법 개정안 관련 보고를 하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금융회사에 문의전화 쇄도
은퇴를 앞둔 대기업 임원인 김모 씨(52)는 은행 정기예금에서 나오는 연간 이자가 30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김 씨는 정기예금에 넣어둔 돈을 은퇴 후에 의지할 노후자금으로 여겼다. 그런데 김 씨는 내년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에 포함돼 세금을 더 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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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법 개정안 발표 다음 날인 9일 앞으로 ‘세금폭탄’을 맞게 된 상당수 자산가가 대안 투자처를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금리로 금융상품의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 가운데 세금 혜택이 없어지기 전에 ‘비과세 막차’를 타려는 고객들로 일부 은행과 증권사 프라이빗뱅킹(PB) 창구가 크게 붐비기도 했다.
프라이빗뱅커들은 “자산가들이 정부의 발표 내용을 일부 예상했지만 막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자 부자 증세에 대한 정서적인 불안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관석 신한은행 PWM서울파이낸스센터 팀장은 “난리가 났다. 어제부터 전화가 너무 많이 걸려 와 멀미가 날 정도”라며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부자 증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PB 고객들이 주로 연락을 해왔다”고 전했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강남센터 부장도 “워낙 저금리인 데다 비과세 상품의 가입기간이 5년에서 7년, 10년으로 늘어나자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고객들이 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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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법 개정으로 이 상품의 비과세 혜택이 없어져 내년 이후 가입자들은 이자소득세(15.4%)를 내야 한다. 비과세 혜택을 누리려면 올해 안에 돈을 맡긴 뒤 최소 10년간 중도 인출하지 않아야 한다.
○ 대안 투자상품 찾느라 분주
은퇴한 김모 씨(57)는 이날 거래하던 은행 지점을 찾아 직원에게 물가연동국채를 구해 달라고 했다가 물량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섰다. 그동안 물가연동국채는 원금 상승분도 과세 대상 이자소득에서 제외됐지만 2015년 1월 1일 이후 발행되는 물가연동국채는 원금 상승분도 과세 대상 이자소득에 포함된다.
김영호 하나은행 PB부장은 “물가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물가연동국채의 가격은 비싸져서(수익률은 하락해) 투자 메리트가 예전보다 덜한데도 수요가 많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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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법 개정이 중산층 은퇴자들의 노후생활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6월 말 3대 생명보험사의 즉시연금 가입자 중 보험료 3억 원 이하를 납입한 계약자가 83.3%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시연금이 자산가들의 세금 회피용 수단이 아니라 중산층 은퇴자들의 노후자금이라는 뜻이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즉시연금 가입자의 대다수는 퇴직금과 금융자산을 합쳐 안전하게 노후자금을 준비하는 중산층이고 세금 회피 수단으로 이용하는 고액 자산가는 일부에 불과하다”며 “즉시연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선별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