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정치부 차장
아마도 ①번이나 ②번이라는 답변이 많을 것이다. 대개 출신지는 고향을 뜻하니까. 하지만 정답이 ③번이라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 아들 병역 특혜, 저축은행 수사 개입 등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가 자진 사퇴한 김병화 전 대법관 후보자(전 인천지검장). 법조인들의 신상을 수록해 놓은 ‘법조인대관’에는 출신지가 경북 군위로 돼 있다. 법조인대관은 당사자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제작한다. 출신 고교까지 그쪽이어서 그는 TK(대구-경북) 출신으로 알려져 왔다. 검찰 몫의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것도 이 덕분이란 얘기가 많았다. 추천권자인 권재진 법무부 장관, 검증을 담당하는 정진영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고교 동문이다 보니 밀어 주고 끌어 주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검사들 중에는 검찰에 입문할 때 출신지를 어떻게 쓸지를 놓고 고민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졸업한 한 전직 고검장. TK 정권 시절 검찰에 입문할 때 주변에서 할아버지가 살았던 경북 포항을 출신지로 써 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대구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산으로 이사한 다른 전직 고검장도 PK(부산-경남)보다는 TK 행세를 하는 게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한 검찰 인사는 “지난달 단행된 일선 검사장 인사만 봐도 출신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18개 일선 지방검찰청 지검장 가운데 영남 출신은 12명인 반면 호남 출신은 광주지검장, 서울북부지검장, 의정부지검장 등 3명뿐인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내내 서울 출신임을 자처하다 김대중 정권 출범 후에야 고향을 공개했다고 한다. 그가 지금도 여전히 잘나가는 데는 능력 외에 이런 ‘처세’가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유인촌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느닷없이 ‘호남 출신’이 된 케이스다. 이명박 정부의 첫 개각 후 “호남 출신이 너무 없다”는 호남 홀대론이 일자 청와대는 그를 ‘호남 몫’으로 분류한 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인사청문회에서 “태어난 곳은 전북 완주지만 스스로는 서울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았다”고 반박했다. 능력과 쓰임새가 인사의 최우선 기준이라면 출신지는 이젠 의미가 없어질 법도 하건만….
조수진 정치부 차장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