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형준 타고르 71주기 맞아 ‘韓印 학술문화제’를 다녀와서
인도 콜카타에 있는 ‘타고르 하우스’의 타고르 동상에 기댄 박형준 시인(왼쪽 사진). 지난달 한국-인도 문인 교류 행사 참석을 위해 인도를 다녀온 시인은 “빈자(貧者)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타고르가 살아있었다”고 전했다. 타고르의 생가인 ‘타고르 하우스’는 인도 문인들에겐 교류의 장이었으며 현재는 박물관 등으로 운영된다. 사진작가 양현모 씨 제공
소음과 평화가 한자리에 있는 곳, 콜카타(옛 캘커타)와 거기서 기차로 세 시간 떨어진 샨티니케탄. 너무나 대조적인 두 장소에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를 보았다.
평화(샨티)와 장소(니케탄)가 합해진, 조합해보면 평화의 장소라는 뜻의 샨티니케탄. 그 호숫가 마을에서 한 아낙이 물 단지에 물을 채웠다가 다시 따르는 의식을 되풀이했다.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끊임없이 담았다가 비워내는 여행인 것인지. 릭샤(자전거택시)를 타고 유칼립투스로 가득한 숲 속 한가운데로 들어갔다가 만났던 시장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엔 그런 곳이 있었다. 숲 속에 널찍한 마당을 펼쳐놓고 동네 사람들이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물건을 파는 그런 시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선다는 그 마켓은 샨티, 그야말로 평화 자체였다.
샨티니케탄 비스바바라티대학에서 열린 이번 문화제는 타고르의 서거일을 맞아 인간의 고통과 구원을 주제로 했고, 양국 문학의 접점에 타고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세계와 함께하는 인도’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대학은 1901년 타고르가 설립했다. 5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학교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아우르는 교육의 요람으로 성장해 지금은 음악 미술 무용 문학 등 예술 분야의 인도 최고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1929년 4월 일제강점기 한국 민중을 위해 동아일보에 게재한 시 ‘동방의 등불’에서 코리아를 ‘동방의 밝은 빛’이라 노래했던 타고르. 그는 식민지 상황에 놓인 조선의 현실을 과거형인 ‘빛나던 등촉’으로 표현했고, 앞으로 다가올 희망은 미래형인 ‘동방의 밝은 빛’으로 형상화했다. 서구의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자치의 옹호’를 ‘등불’로 표현한 것으로 타고르의 민족주의를 넘어선 세계 시민으로서의 열린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샨티니케탄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콜카타로 향했다. 콜카타에는 타고르의 생가인 타고르하우스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만의 사람과 온갖 짐승들이 넘나드는 콜카타의 하우라 다리 밑을 흐르는 흙빛 후글리 강 아래로 꽃시장 ‘물리크 가트’가 펼쳐져 있었다. 질척거리는 진창 속에서 꽃을 치장하고 파는 사람들, 그 형형색색의 꽃시장을 지나자 강물 속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막대기 같은 똥을 물속에 뚝뚝 떨어뜨리는 사람 곁에서 천연덕스럽게 그 강물로 이를 닦는 노인을 보았다. 타고르는 “새들은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도 한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양립할 수 없는 듯이 보이는 이승에서의 삶의 문제와 그것을 넘어선 구원의 문제에 대해 쉽사리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다만 콜카타 진창 속에서 형형색색으로 피어나는 꽃들처럼 타고르의 삶과 시가 가장 가난한 이들의 가슴 속에서 환영처럼 떠다니는 듯해 가슴이 아려왔다.
박형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