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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담배 문 아이들, 입 다문 어른들

입력 | 2012-08-01 03:00:00

전국 첫 금연거리 서울 성북구 ‘하나로거리’ 가보니




금연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들. “왜 여기서 담배를 피워요”라고 묻자 “에이시, 아저씨가 뭔데요”라고 말했다. 이형관 인턴기자 성균관대 사학과 4학년

고등학교 1학년인 A 군의 손에서 흰 연기가 계속 나왔다. 입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요? 애들 다 여기서 피우는데….”

혼자 서 있는 B 양(17) 역시 마찬가지. 그는 “친구들 모두 피워요”라고 말했다. 금연홍보 표지판을 가리키자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광고판인 줄 알았어요. 교복 입고도 피운 적 있어요.”

취재진이 7월 30, 31일 서울 성북구 ‘하나로거리’를 찾았을 때 청소년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흡연이 금지된 거리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낮이나 밤이나….

하나로거리는 성신여대 입구 일대 240m 정도의 길이다. 2003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금연거리로 지정됐다. 당시 성북구는 “청소년이 많이 찾는 만큼 금연거리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금연구역이 아니라 흡연 천국이었다. 중고교생들은 아침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담배를 꺼냈다. 고교 1학년 C 양은 “담배를 피워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금연 거리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성북구청이 전봇대나 가로등에 붙인 금연 홍보문은 잘 보이지 않았다. ‘STOP Smoking, 건강도시 성북’ ‘담배 피우면 안 돼요’라는 표지를 다른 광고지가 가렸다.

‘청정원 지킴이’가 계도활동을 하고, 꽁초를 버리면 단속한다고 구청 관계자가 설명했지만 현장에선 찾기 힘들었다. 기자가 물어보니 지킴이는 대부분 65세 이상 노인으로 2명이 일주일에 세 번, 오후 1∼4시에 거리를 돈다고 했다. 지킴이에게 편한 시간이지만 8월은 혹서기라 쉬기로 했다고 했다.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모 씨(26)는 “저녁만 되면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워 숨쉬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따가운 눈길을 의식해서인지 일부 청소년은 금연거리 안의 카페를 찾는다. 유명 카페 3층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고교 2학년 D 군은 “거리보다 여기가 더 좋다. 에어컨도 있고 앉아서 피울 수도 있고…”라고 했다.

기자가 구청에 다시 물었다. 금연거리에서 청소년이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관계자는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예. 특히 영화관 근처에서 많이 피우죠?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청소년이 담배 피운다고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없으니까요.”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이형관 인턴기자 성균관대 사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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