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문화부장
유력 주자로 꼽히는 박근혜 후보는 어떨까. 그의 출마선언문에는 ‘불안’이 일곱 차례 잇따라 나온다. 청년들의 일자리 불안, 직장인의 실직 불안, 전세금 불안과 대출금 상환의 불안, 노후 불안 등을 꼽았다.
대선 앞두고 ‘걱정’이 시대 화두로
시대의 하늘에 낮게 내리깔린 불안의 구름이 우리만의 것일까. 글로벌 경제위기는 유럽의 우등생으로 꼽혀온 독일의 발치에까지 다가왔다. 역시 위기에서 한발 비켜서 있었던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최근 방영한 3부작 특집 다큐멘터리 ‘곧 여기 닥친다(Coming Here Soon)’에서 그리스, 아일랜드, 일본의 경기침체를 현장에서 잇따라 조명했다. ‘여기’는 당연히 영국을 의미한다. 그러나 경비업체 인턴으로 취업해 힘든 훈련 과정을 이겨내는 일본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인류 차원의 불안이 처음 진단된 일은 아니다. 하이데거는 불안을 현대라는 시대의 특징으로 설명했다. “우리의 시대는 흥분된 시대이지만 정열의 시대는 아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풍요와 자극이 남발되면서 인간이 무엇을 진정 의미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가가 한층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문화사적으로 19, 20세기의 전환기에 불안은 시대의 징표로 떠올랐다. 문학의 카프카, 미술의 뭉크, 음악의 말러는 불안을 주요 주제로 형상화한 각 장르의 아이콘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총성이 불안한 시대를 마침내 파국으로 몰아넣으면서 그들은 시대의 예언자로 인정받게 됐다. 1929년 일어난 대공황은 세계를 한층 두꺼운 불안의 구름 아래 내몰았다.
안철수 원장은 ‘안철수의 생각’에서 ‘정치를 한다면 롤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으로 미국 전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꼽았다. 대공황의 위기 속에서 뉴딜 정책을 추진해 경제를 재건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점을 들었다. 안 원장이 택한 선택지는 오늘날 시대가 마주친 ‘불안’을 감안할 때 영악한 답안으로 볼 수도 있다. 루스벨트는 당대 위기관리, 불안관리의 달인이었다.
미래로 나아갈 동력 소진될 수도
불안이 만연하는 시대는 이기심이 춤추고 미래로 나아갈 동력도 소진되기 쉽다. 1차대전 이후 불안과 공황의 시대는 루스벨트를 낳았지만 무솔리니와 히틀러도 낳았다. 개인은 자신의 경험 총합 안에서 가장 지혜롭게 불안과 위기를 관리하려 하지만 그 총합이 집단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불안의 시기에 솟구치는 삶의 안전망, 복지의 요구는 위기를 딛고 재도약을 위해 활용해야 할 자원의 분배와 상충할 수도 있다.
루스벨트는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가 지금 진정으로 불안해할 것은, 어쩌면 불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