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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7월의 오후 시애틀, 비처럼 내리는 로큰롤

입력 | 2012-07-24 03:00:00

2012년 7월 23일 월요일 흐림. 눈 인 시애틀, 미드나잇 인 런던.
트랙 #19 Steve Vai ‘The Boy from Seattle’(1995년)




그날 오전 11시 58분. 낮술에 취해 있었다. 휴가의 첫 여행지로 잡은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동경해 마지않던 너바나, 펄잼 등 록 밴드들이 주도한 1990년대 그런지(grunge) 열풍의 성지에 왔다는 흥분 탓인지 시내 레스토랑에서 브런치에 곁들인 샴페인 한잔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록의 황금기는 90년대였어. 로큰롤은 죽었다는 자조(自嘲)만큼 절절한 로큰롤이 또 어디 있겠어? 지금 같은 시애틀의 오후에 비까지 내려준다면….’ 그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앞에 90년대식 회색 볼보가 멈춰 섰다. “어서 타요! 난 레일라라고 해요.” 뒷문으로 고개를 내민 금발의 여인이 소리쳤다. 뒷좌석에 몸을 싣자 옆자리에서 오랫동안 감지 않은 머리 냄새가 진동했다. “하이. 커트 코베인이오. 그냥 커트라고 불러.” 차가 움직였다. “하월 스트리트의 ‘리-바’로 가자고! 앨범 발매 파티가 있거든. 출발!”

커트는 그곳에서 레인 스탤리(앨리스 인 체인스)와 크리스 코넬(사운드가든)을 소개해 줬다. 그는 잔뜩 취했지만 바 한쪽의 에디 베더(펄잼)를 가리키며 “날 따라하는 쓰레기”라고 속삭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레일라는 화장실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감회에 빠진 내가 말했다. “아, 믿기지 않아요. 90년대 시애틀에 와 있다니. 난 2012년에서 왔거든요.” 레일라의 눈은 젖어 있었다. “난 이런 우울하고 냉소적인 시애틀의 분위기가 지겨워요. 찢어진 청바지만 입고 다니는 커트도. 록의 ‘벨 에포크’는 60년대 런던에 있었다고요. 비틀스, 롤링스톤스, 야드버즈…. 진짜 로큰롤의 시대였죠. 시애틀 출신 지미 헨드릭스(사진)도 그때 영국에 건너갔잖아요. 거기로 갈 수 있다면….”

그때였다. ‘댈러웨이 부인’의 빅벤에서 들려오듯, 자정 종소리가 습한 밤공기를 갈랐다. 우리 앞에 60년대 스타일의 캐딜락이 멈춰 섰다. 뒷문이 열렸다. “어이, 금발 아가씨, 이 밤에 잭 더 리퍼와 약속한 게 아니라면 어서 타요!” 차 안에는 청년 셋이 타고 있었다. “난 해리슨이오. 그냥 조지라고 불러. 여긴 내 친구 클랩턴 씨. 앞자리는 미국에서 온 앨런이오. 우디, 시나리오는 잘돼 가나? 오늘밤, 타워브리지 근처 바에서 아이디어 좀 챙겨 보자고. 자, 준비됐으면, 출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