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1.5세 첫 美연방 종신직 판사된 존 리
13일 미국 시카고 도심의 덕슨연방법원 25층 제임스 벤턴 파슨스 메모리얼 법정에서 열린 존 리 연방판사 취임식에 가족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사진 왼쪽부터 동생 대니얼 리 컴퓨터 컨설턴트, 데이비드 리 수학교사, 어머니 이화자 씨, 존 리 판사, 아버지 이선구 씨. Genevieve Lee, TrueLee Photography 제공
미주 한인 역사상 3번째이자 한인 1.5세로는 처음으로 미 연방 종신직 판사에 오른 존 리(한국명 이지훈·44) 일리노이 주 북부지원 판사는 새 일에 대한 기대가 컸다. 리 판사는 1960년대 파독 광원이었던 아버지 이선구 씨(72)와 파독 간호사였던 어머니 이화자 씨(68)의 맏아들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미국 사회의 주류로 우뚝 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17일(현지 시간) 시카고 도심의 덕슨 연방법원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갖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종신직 연방판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소감을 차분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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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로서 미국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아시아계 미국인 변호사가 거의 없어 이 분야에서 멘토를 찾기가 너무나 어려웠다”며 “재판정에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가 나 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일하기가 힘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치원에 다녔을 때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 어려움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선생님이 미술 프로젝트를 한다며 집에서 깡통(a can of beans)을 준비물로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깡통을 달라고 해서 학교에 가져갔더니 다른 학생들은 모두 빈 시리얼 박스를 갖고 왔어요. 미국에 오는 많은 외국인들이 이런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로서 승부를 봤다.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위대한 방법은 법이라고 믿고 로스쿨을 선택했고 변호사 자격증을 거머쥐었다. 리 판사는 “고객들은 처음엔 한국계 미국인인 나를 많이 신뢰하지 않았지만 내가 한 일의 성과와 품질을 보고 점점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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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하버드대 로스쿨 동문이며 2년 후배인 리 판사는 “하버드 로리뷰 편집장을 지낸 오바마는 학창시절 확실한 리더였다”며 “나는 오바마를 존경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날 아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리 판사는 한국계 미국인 젊은이들에게 꿈과 열정을 추구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넌 이것은 못할 것’이라거나 ‘이건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해도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물러서지 말고 추구해야 한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