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설 수 있는 자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영화 ‘황진이’의 한 장면.
그는 여행을 좋아했다. 기방에 갇혀 있기보다는 ‘길 위의 삶’을 즐긴 것이다. 금강산 유람 때는 이생원이라는 남성을 동반했다. 그는 “그(이생원)로 하여금 하인 없이 베옷에 초립을 쓰고 양식 보따리를 짊어지게 했다. 그러고는 송낙을 머리에 쓰고 베적삼에 무명치마를 입고서 죽장망혜로 뒤를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이 금강산에 들어가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러 절에서 걸식하고 혹 스스로 자신의 몸을 팔아 승려에게 양식을 얻기도 했다.”(유몽인의 ‘어우야담’) 놀랍다. 구걸을 하고 몸을 팔지언정 남성한테 결코 의존하지 않는 이 위풍당당함이라니!
더 기막힌 일화도 있다. “일찍이 풍악(楓嶽·금강산)에서 태백산과 지리산을 지나 금성(나주)에 오니, 고을 원이 잔치를 벌이는데, 풍악과 기생이 좌석에 가득하였다. 황진이는 해어진 옷에다 때 묻은 얼굴로 바로 그 좌석에 끼어 앉아 태연스레 이를 잡으며 노래하고 거문고를 타되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으니 여러 기생들이 기가 죽었다.”(허균의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 이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 기존의 통념 따위는 일절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와 배짱, 이것이 바로 지성과 야성의 눈부신 카리스마다. 알다시피, 그는 기생이자 예인이며 또 뛰어난 시조시인이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에’ ‘청산리 벽계수야’ 등은 시조사를 장식하는 ‘불후의 명작’들이다. 그뿐인가. 그는 당대 최고의 기(氣)철학자인 서경덕의 제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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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그는 청순하지도 요염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런 구획 자체를 간단히 뭉개버렸다. 또 의존하지도 매이지도 않았다. 그가 전하는 ‘사랑법’은 아주 간단하다. 사랑이란 타인의 욕망에 갇히는 게 아니라는 것. 홀로 설 수 있는 자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누구든 ‘사랑의 화신’이 되기를 원한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고미숙 고전평론가